[새책]「문명의 시간여행」

  • 입력 1997년 9월 2일 07시 39분


[안택원 지음/대원출판 펴냄] 컴퓨터를 두드리고 자동차를 굴리는 현대인들. 그러나 머리속에는 먼 옛날 공룡과 대결하던 시대로부터 수렵시대, 농경시대를 거쳐온 의식의 원형이 켜켜이 쌓여 있다. 『미래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태초문제로 귀결된다』. 정치학자 안택원(한국 정신문화연구원 교수)의 이야기다. 그의 책 「문명의 시간여행」(대원출판)은 공포 싸움 사랑 천국과 지옥 등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가지고 인류의 시원(始原)을 향해 달려들어간다. 국가는 어디서 기원하는가. 인간 깊숙한 곳에 내재한 원형질이 외부세계의 국가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전쟁은, 형벌과 종교는…. 저자가 논지를 풀어가는 열쇠는 인간의 뇌(腦). 대뇌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공격성을 만드는 「R 복합체」, 모성애 등 사랑과 이타심을 빚어내는 「림계」, 이성(理性)을 담당하는 신피질 등. 인간이 냉혈동물 포유류 영장류로 진화하는 각각의 단계에서 얻어낸 산물이다. 나약한 포유류가 살아남은 것은 림계의 특성인 「모성애」와 「꿈」 덕분이다. 모성애는 약한 새끼를 보호하고 꿈은 강자와의 직접대결을 피하게 하기 때문. 그렇게 살아남은 원형질을 지닌 채 인류는 문명을 창조하고 긴 문명의 여행을 시작한다. 저자는 인간의 가장 깊숙한 본능인 「공포심」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영웅설화는 왜 탄생했는가. 어둠과 공포심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다. 상고(上古)의 영웅은 자기희생으로 공포를 몰아내는 존재였다. 그러나 권력에의 충동은 영웅으로부터 「희생」을 빼앗아 갔다. 권력에 대한 숭배가 영웅설화를 대신했다. 인간의 역사가 지배―피지배와 고통의 역사로 끝나는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먼 옛날 포유류가 살아남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나약함에 의해 강해졌다」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모성애로부터 출발한 인간의 희생정신이 구원의 열쇠다. 희생정신이란 자기의 소중한 것을 빼앗김으로써 자비와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이는 인간을 야수의 모습에서 벗어나 비로소 신의 모습에 이르게 한다는 것. 책의 큰 줄기 사이에는 성역할, 마녀사냥, 정복전쟁의 기원등 인류문화의 다양한 사건들이 고금을 오가는 풍성한 지식과 독특한 해석으로 수놓아진다. 『새로운 의식과 문명이 삶의 지평선에 떠오르고 있다. 그것은 생명존엄에 대한 각성으로 시작되는 신과 인간의 합창이다』 새 밀레니엄을 바라보는 저자의 결론은 이상주의와 낙관론의 색채를 짙게 띠고 있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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