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박권상/천하대란의 대선정국

  • 입력 1997년 8월 19일 19시 51분


정치에서 한달은 대단히 길다. 한달 전 신한국당의 이른바 자유경선이 끝났을 때는 두가지 사실이 명료했다. 하나는 올해 대통령선거가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후보간의 경쟁이 되고 만일 야권의 두 후보가 단일화를 이룬다면 김영삼정권의 공과(功過)시비를 중심으로 현상유지냐 현상타파냐, 정권연장이냐 정권교체냐의 알기 쉬운 대결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 붕당정치의 산물 ▼ 두번째로 신한국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모든 여론조사에서 여당의 이회창후보가 크게 앞서 「이회창대세론」이 고개를 들었다. 7월22일에 실시된 어느 방송국의 조사에서는 이회창 48.9%, 김대중 26.1%, 김종필 10.8%로 양김을 합해도 이후보와는 10%이상의 거리가 있었다. 그로부터 한달 사이에 사정은 크게 달라졌고 형세는 역전됐다. 이틀 전 보도된 어느 월간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김대중씨가 36.3%의 지지율로 이회창씨(35.2%)를 살짝 따돌렸고 김종필씨(13.3%)가 뒤따랐다. 예측불허의 시소게임이다. 이렇듯 급격한 정세변화는 이후보 두 아들의 병역면제문제, 텔레비전 토론 등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만일 양김이 손을 잡는다면 헌정사상 초유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지난 한달 동안의 또다른 변화는 조순서울시장의 출마선언과 쉴새없는 여권내부의 불협화음이다. 국민인기도가 높은 이인제경기지사의 출마설이 가시지 않고 예선때 이회창후보만들기에 앞장섰던 김윤환씨의, 이후보 승리를 불신하는 수수께끼 같은 발언 등 여권내부에 심상치 않은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만일 이회창후보가 단호하면서도 유연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지사나 박찬종씨 같은 이가 대선에 나선다면 여권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야권이라고 평탄한 것 같지는 않다. 김대중씨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야권후보 단일화협상이 진행되는 때에 조순씨가 야권 제3후보로 나섰다. 불과 석달 전인 5월19일 조순씨는 김대중씨가 후보로 당선된 국민회의 전당대회에 참석, 『정권교체에 천시(天時)가 왔다』고 축하했는데 이제는 3김씨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다. 그의 시장직 사퇴에 따라 앞으로 10개월간 수도서울은 중앙정부의 직할통치지역으로 뒷걸음칠 것이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시정에 전념하겠다는 공약을 뒤집고 스스로 당적을 버렸던 민주당에 들어가 대선에 나서겠다는 결심은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야권후보임을 부정하며 여야관계를 떠나 기존정당의 틀을 바꾸겠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야권 후보단일화 움직임에 참여할 것같지 않다. 앞으로 선거까지 4개월이 남았다. 지난 한달 동안의 파란만장한 소용돌이에 비추어 앞으로 어떤 가공할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 그것은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마음가짐이 결여된 정치문화의 후진성 때문이며 오직 권력쟁취에만 혈안이 되는 붕당정치의 산물이다. ▼ 나라를 먼저 생각하길 ▼ 만일 야권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여권에서 이인제지사 등 한두사람이 뛰어든다면 대선정국은 크게 흔들리고 득표율 20%대의 대통령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선거는 혼란의 종식이 아니라 더 큰 혼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후보자가 1인일 때에도 선거권자 3분의 1이상을 득표해야 당선된다고 규정했다. 이 헌법정신을 살려 국민의 다수의견이 집약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연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제도적 장치의 연구에 앞서 개인보다는 당(黨), 당보다는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애국심이 후보자들에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박권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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