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의사부부 배앓이, 수지침 한방에 뚝

  • 입력 1997년 7월 10일 08시 18분


가끔 외출중에 노란 가방을 메고 병아리떼처럼 쫑쫑쫑 선생님 뒤를 따라가는 유치원 어린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눈길을 두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 유치원선생님이 초점이 된다. 얼마나 힘들까. 돌아갈 때까지 한 아이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할텐데…. 철저한 직업의식의 발상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더 원초적인 보호의식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번은 의사부부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박람회에 참가하는 10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다. 전문직종일수록 모시기가 까다롭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처음부터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러나 나흘째 저녁에 드디어 난감한 일이 생겼다. 풀코스 정식을 들었던 의사부인이 급체를 호소하는 것이었다. 안색이 하얗게 변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에 어쩔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를 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편을 비롯해 주변에 계신 여러 의사선생님들이 나처럼 난감한 표정만 짓고 있는 점이었다. 응급실로 모셔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우선 내방식대로라도 응급처치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평소 들고다니던 수지침을 꺼냈다. 의사선생님 앞에서 침을 들었으니 요즘 우스갯소리로 헬리콥터 앞에서 부채질한 모양이 됐다. 떨리는 손으로 손바닥과 손가락에 침을 놓았다. 몇분이 지났을까. 손님이 시원하게 트림을 한 뒤 안색을 다시 찾는 것이었다. 성공이었다. 웃는 환자모습을 보고서야 나도 안도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선생님들이 한마디씩 했다. 『진선씨가 의사보다 나은데…』 글쎄,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여행중에는 이런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내가 소속한 투어컨덕터양성학원 NTA에서는 수지침 등 응급처치요령을 가르치고 있다. 송진선(투어컨덕터·NTA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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