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복지부의 「약사회 봐주기」

  • 입력 1997년 6월 10일 20시 22분


『공무원인지 업계대표인지 구분이 안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10일 보건복지부쪽을 가리키며 가시돋친 극언(極言)을 서슴지 않았다. 공정위는 11일 高建(고건)총리가 주재하는 규제개혁추진회의에서 소화제 해열제 드링크류 등 간단한 약은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팔 수 있도록 하는 단순의약품 소매점판매(OTC)제도의 도입과 약품의 표준소매가제도 철폐방안을 사실상 확정할 예정이었으나 9일 돌연 상정을 포기했다. 보건복지부의 완강한 반대가 그 이유. 그 배후에는 대한약사회의 약사면허 반납, 휴폐업이라는 극한투쟁 선언이 한몫했다. 말로는 오는 8월 의료개혁위원회의 논의 결과가 나오면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공정위 등 관련 부처에서조차 『지금 추진해도 어려운 일이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진 시점에서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약품은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데다 국민건강과 직결된 분야여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OTC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등 선진국은 국민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도입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나라의 의약품 유통과 약사제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익집단이 「밥그릇」을 위협받을 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부처마저 소비자들의 편익증진이라는 「보편성」에 앞서 업계의 「특수성」에 집착, 중재자 역할을 뒷전에 미루고 이익집단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선다면 그 과정에서 조직화되지 않은 일반 국민의 이익은 묵살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에서 보여준 복지부와 공정위의 미숙한 정책조정 시스템은 우리사회의 여러 이해집단에 「뭉치면 산다」는 역설적인 교훈만 남긴 셈이다. 이용재기자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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