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정도상 새장편 「지상의 시간」

  • 입력 1997년 6월 5일 08시 19분


한총련 시위가 격화되던 2일 자정, 지난 시절 학생운동과 민족민중문학의 한가운데서 활동했던 작가 정도상의 작품 「지상의 시간」(한뜻출판사·전2권)이 인쇄소로부터 세상에 나왔다. 그는 지난 84년 전북대 지하학생조직인 「제3패밀리」를 결성한 후 94년초 문익환목사가 숨지기까지 10년간 학생운동과 재야활동을 펼치며 민족민중문학의 대의에 복무했던 작가. 그러나 그가 오랜 침묵의 시간을 정리하고 펴낸 「지상의 시간」은 그 세월에 대해 애정만큼 강렬한 부정(否定)을 품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혼자 상경, 중학생 때부터 서울 앰배서더호텔 17층에서 타일 붙이는 막노동을 했다. 길 위에서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 생선장사, 하늘 아래서 지붕수리 옥탑수리 전선공사 전봇대수리를 다 거쳤다. 그가 군 제대후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가서 거쳤던 여로에는 조직결성과 지도활동, 집시법 위반과 배후조종혐의, 수배와 수감, 제적과 복교가 있었다. 「지상의 시간」은 이같은 파란의 시절이 응축돼 있다. 붙잡힌 프락치에게 한맺힌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운동원의 또다른 「고문」, 운동을 위해 여성맹원의 낙태를 강요하는 경직된 지하조직의 초상, 「중앙」의 강권에 따라 무리한 파업에 나섰다가 분신으로 책임을 다하려 했던 한 노동자의 운명이 자기부정의 뼈아픈 성찰로 쓰여져 있다. 이 모든 이야기를 아우르는 것은 인본주의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던 한 비판적 지식인의 초상이다. 그는 이 작품의 탈고 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 아우의 육필원고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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