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김용택 지음/창작과 비평사/6천5백원( 돼지오줌보에 바람을 불어넣어 신나게 차대는 까까머리 소년들, 명절날 마을회관에서 밤새 벌어지던 노래자랑대회…. 이제는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서나 찾아야 할 풍경들. 시인 김용택씨가 그의 시만큼이나 따스한 33편의 산문으로 기억 저편에서 건져올린 장면들. 책속에 그려진 농촌은 저자가 태어나 마흔아홉해를 살아온 전북 임실의 진메마을. 온 마을로 세배를 다니는 정월의 풍경, 모내기후 돼지를 잡고 동네잔치를 벌이는 들썩거림도 웃음을 자아내지만 정작 가슴을 치는 것은 「풍요로운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하는 화두다. 내집 남의집 구분없이 봄이면 모내기, 가을이면 추수를 함께 하는 진메마을 사람들은 밥때 제집앞을 지나는 이웃이 있으면 「밥 좀 묵고」 가라고 소매를 잡아끄는 것이 인사다. 저자의 노모는 「환경운동」이라는 거창한 말은 몰라도 겨울날 마당에 뜨거운 물을 버릴 때면 땅속에 잠자는 어린 벌레들이 눈을 다칠까봐 『눈감아라 눈감아라』하고 외친다. 그러나 가난해도 푸근했던 마을은 저자가 제목에서 암시하듯 이제 「그리운 것」이 돼 버렸다. 아이들 웃음소리만으로도 떠들썩했던 마을이 「총인구 43명」의 노인들만 사는 고요한 동네가 돼버린 것이다. 평생 도시로 나가지 않고 동네어귀 느티나무처럼 고향을 지켜온 저자는 말한다. 「…너그 그것이 진짠지 알지. 차를 타고 다니며 아파트 깊숙한 방에서 저 휘황한 거리에서 그 점잖음과 쓸데없는 편견에서 인간의 냄새는 없어. 인간의 냄새는 땅에서 나올 뿐이야…」.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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