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제망매」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고종석 지음/문학동네/6천원) 한당송원(漢唐宋元)의 중국 문장가들은 노장(老莊)과 공맹(孔孟)에 전거를 둔 문장들을 구사, 글의 수려함과 고풍스런 힘을 더하고자 해왔다. 「제망매」 「서유기」 「찬 기 파랑」. 이 단편집에 수록된 글들의 제목은 향가와 중국 고전에서 따왔다. 「사십세」처럼 우리 작가 이남희의 글 제목에서 따온 것도 있다. 고종석 작품의 특징은 무수한 인용에 있다. 그것은 따옴표를 쓴 명인(明引)과 그렇지 않은 암인(暗引)을 망라한다. 이는 그의 작품이 주로 지식인 사회의 풍경을 담고 있으며 언어의 유희로 이뤄져 있음을 드러낸다. 그 지식인들은 전체와 중심의 논리를 떠나 주변과 개인의 자유를 지향한다. 그러나 냉소적 회의에 빠지지 않으며 넉넉한 미지의 새 세상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그같은 동경이 작가를 파리에 체류하게끔 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유기」는 서쪽(파리)에서 유랑하고 있는 지식인들의 자화상. 파리에서 외국인으로 박대받는 아랍계 여성사진작가,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쓴 홍세화임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한국인 망명객, 그리고 정신의 자유를 위해 자발적으로 파리에 망명한 작가의 분신, 그와 이혼한 후 직장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퇴직한 아름다운 전처. 인간다운 자유를 찾아 주변을 떠도는 지식인의 초상이다. 그 지식인이 열망하는 인간성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은 실천적 언어학자 기 파랑, 희생으로 사랑을 이룬 의사 누이 혜원(제망매)에서 드러난다. 언어 구사의 묘미와 지성의 즐거움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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