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상외교 당당하게 하라

  • 입력 1997년 5월 10일 20시 16분


정부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압력에 굴복해 수입품을 차별하지 않고 국내 소비절약운동의 자제를 내비친 것은 저자세 통상외교의 표본이다. 통상외교에 당당해야 할 정부가 외국의 부당한 통상압력에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이 한심하다. 통관이나 제도 측면에서 지나친 수입규제는 시정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민간단체의 소비절약운동까지 정부가 하라 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방어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통상외교를 펴야 한다. 작년부터 종교단체 소비자단체 여성단체 등이 시작한 소비절약 캠페인은 순수한 민간운동이다. 총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서고 무역적자가 2백억달러에 이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벌이는 소비절약운동은 통상이슈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를 정부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며 미국과 EU가 통상압력을 가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건전한 소비문화 확립을 위한 민간단체의 절약운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외제품 소비를 자제하자는 호소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의 교역대국이며 엄청난 수입시장이다. 따라서 선택적 구매권을 행사할 수도 있는 우월적인 지위에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효율적인 통상외교를 펼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우리의 국내 상품시장은 거의 완전 개방된 상태다. 관세율도 선진 어느나라 못지않게 낮은 수준이다. 이에 반해 오히려 미국 일본 EU 등 12개 국가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은 반덤핑관세나 고(高)관세 쿼터제 등 유형 무형의 수입장벽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각국의 무역장벽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 연례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라별로 시정을 강력 촉구하는 공격적인 통상외교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외무부 통상산업부 재정경제원 등으로 분산돼 있는 통상업무의 조정도 검토할 때다. 갈수록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상기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기구 신설이든 창구 일원화든 인원을 늘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본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지나치게 겁내서도 안된다. 상대국이 제소한다고 하면 논리 개발이나 대응책 마련에 앞서 걱정부터 하는 당국의 유약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WTO를 역으로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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