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71)

  • 입력 1997년 3월 17일 08시 25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 〈26〉 그는 카페 안으로 들어서며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부터 쳐다보았다. 시간은 벌써 여덟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그는 아홉시까지만 이곳에 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커피를 주문하자 여자도 다른 것을 시킬 듯하다가 작은 소리로 커피라고 말했다. 『식사는 하셨나요?』 차를 시키고 나서 여자가 말했다. 『예. 안에서』 그는 여자에겐 식사를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마 여자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이 분위기를 어떻게 잘 대응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예전의 짧은 느낌으로도 여자는 그렇게 사교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자가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땐 병적이라고까지 여자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말고는 달리 이 일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죄송해요, 이렇게 불쑥 찾아와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면서도 그런 생각은 했어요. 내가 지금 잘못 사람을 찾아가고 있다고…』 『그때 그곳엔 다시 가지 않았습니까?』 아까 카페로 들어오기 전에 물었던 말을 그는 다시 물었다. 카페의 여자가 커피를 내오며 여자를 힐끔거렸다. 『그를 찾아가지는 않았어요』 카페의 여자가 물러간 뒤 여자가 대답했다. 『그럼?』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어요. 김운하 병장이 제대를 했다는 얘기를…』 『그럼 나를 찾아 부대로 왔던 겁니까?』 『전과 같은 마음으로 갔던 건 아니었어요』 더 물어도 그 부분의 이야기는 자신이 잘 대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에 그 졸병은 자신의 애인에 대해 여러번 그에게 이야기를 했다. 학교를 다닌다고 했고, 지리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만났느냐고 물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이쪽의 여러 남자 친구들과 저쪽의 여러 여자 친구들이 함께 만났는데, 후에도 계속 만나고 있는 커플은 자기들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유류품 정리를 그가 했다. 어쩌면 그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졸병이 죽은 다음 그의 마지막 유류품일지 모를 여자의 가슴 속에 남은 그의 기억까지 정리해 주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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