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권복규/보건소,진료가 「본업」아니다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3분


지방화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보건소도 많이 달라졌다. 현대화된 의료시설을 갖추고 전문의료 서비스를 제공해 주민들의 호응을 얻는 곳이 늘고 있다. 보건소라고 하면 성병치료나 연막소독 정도를 생각하던 일반인들에게야 바람직하고도 긍정적인 변화로 비치겠다. 그러나 보건소는 지방자치단체의 보건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보건소법에 규정된대로 민간 의료기관이 담당할 수 없는 분야, 즉 △의무 및 보건행정 △의료기관의 관리와 지도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환경이 바뀌면서 관심영역이 확장되고는 있지만 보건소는 결코 병원이 아니다. 한정된 정부의 자원을 활용해 사회 전체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국가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병들을 예방하며 소외된 이들의 복지를 추구하는 기관이다. 물론 농어촌 지역에서는 보건소와 보건지소가 공공의료 기관으로서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보건소까지 경쟁적으로 시설을 확충하고 진료비중을 늘려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 보건소가 관할하는 지역사회의 건강문제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노인이 많은 곳은 노인성질환 관리에 대한 교육이, 학교가 많은 곳은 학교보건사업 활성화가 가장 중요하겠다. 따라서 보건소는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보건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행정의 기본이 될 정확한 보건통계를 확보하며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투입해 상태를 개선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직은 이런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도 보건소마다 진료행위의 비중을 점차 높여가고 있다. 물론 값싼 의료서비스로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고 진료수입이 생기는데다 표를 의식하는 단체장의 인기마저 높일 수 있으니 좋기는 하겠다. 하지만 이는 의료공급체계를 왜곡시켜 민간의료기관과의 갈등을 빚거나 약물 치료행위의 남용 등 부작용을 낳기 쉽다. 질병이 생기기 전에 그럴만한 소지를 찾아내 막고 주민들을 계도하며 보건행정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건강증진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고유업무를 다 하고도 여유가 남아 훌륭한 진료시설을 갖춘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일이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순간의 인기나 돈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공공기관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권복규 <공중보건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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