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황장엽 원하는 곳 가게해야

  • 입력 1997년 2월 13일 20시 34분


북경(北京)에서 망명을 신청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黃長燁(황장엽)씨는 정치망명에 따르는 국제관례에 의해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해야 한다. 그가 원하는 곳이 한국이라면 서울로 오게 해야 한다. 황비서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金日成(김일성)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북한의 대표적 지식인이며 金正日(김정일)의 사부(師父)격인거물이지만 북한체제에 염증을 느껴 망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황비서의 한국망명을 허용하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에 대해 중국측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당사국들이 원만하게 처리할 것을 주장, 불투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망명 처리원칙은 간단하다. 국제사회에 정립돼 있는 보편적인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 대변인 등이 이미 논평을 통해 강조했듯이 통상적인 국제규범과 관례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정치적 난민에 관한 국제적 관행이나 인도주의원칙에 따라 황비서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통해 가고 싶어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안전하게 가게 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건의 발생지인 중국의 태도다. 중국은 한국과도, 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의 후견인격인 위치에서 과거 오랫동안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어 왔다.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현재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세계를 이끌고 있는 지도국이다. 또 유엔난민협약을 아무런 유보없이 수용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도국에 걸맞게 행동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이다. 그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과 국제관례인 정치 망명기준 등에 입각해 이 사건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황비서의 망명은 지난 94년7월 김일성사망후 북한에 최대의 충격을 준 사건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사건발생후 북한이 관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인 첫 반응에서 황비서의 망명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로 납치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등 당황한 빛을 감추지 못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더욱 냉각되고 새로운 긴장이 조성될 것도 예상되는 만큼 국방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황비서의 망명을 혹시라도 국내정치에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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