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87)

  • 입력 1997년 2월 12일 18시 11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 〈87〉 수다쟁이 이발사는 계속해서 자신의 넷째 형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형은 바그다드에서 푸줏간을 했습니다. 형의 푸줏간에는 지위 높은 분들이나 돈 많은 부자들도 단골이었기 때문에 형은 많은 돈을 벌어 가축과 전답도 사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가게에 앉아 있으려니까 희고 긴 수염을 한 노인 한 사람이 찾아와 은화 몇 닢을 내어놓으며 말했습니다. 「이 돈으로 고기를 좀 주시오」 그래서 형은 그 돈에 해당되는 만큼의 고기를 베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이 돌아간 뒤에 보니 노인이 주고간 은화들은 새하얀 것이 유독 반짝거리며 빛이 났습니다. 그것이 하도 신기하여 형은 그것들은 따로 넣어두었습니다. 긴 수염을 한 노인은 그 뒤 다섯 달 동안, 거의 매일 같이 찾아와 그 유난히도 희고 빛나는 은화를 주고 고기를 사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형은 노인에게서 받은 은화를 따로 궤짝에 넣어 간직하곤 했습니다. 다섯 달이 지난 뒤 형은 마침내 그 돈을 꺼내어 양을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궤짝을 열어보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궤짝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들어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은화 모양으로 동그랗게 오린 흰 종이들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형은 너무나 놀랍고 실망스러워 자신의 얼굴을 때리며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렇게 되자 형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형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놀랐습니다. 그 수염이 긴 노인이 다시 한번 나타나기를 형은 기다렸습니다. 「오, 알라시여, 그 재수없는 늙다리가 한번만 더 오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그 노인은 거짓말처럼 나타났습니다. 은화를 들고 말입니다. 형은 벌떡 일어나 노인을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여보시오, 동네 사람들! 모두 날 좀 도와주시오. 이 늙은 사기꾼과의 시비를 들어주시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도 노인은 아주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푸줏간 주인,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하오? 나를 죽이는 것이냐, 아니면 당신이 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것이냐?」 그러자 형은 되물었습니다. 「내가 왜 망신을 당한단 말요?」 「몰라서 묻는 거요? 당신이 양고기라고 속여 사람 고기를 판다는 걸 말이요?」 이 말을 들은 형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소리쳤습니다. 「이 저주받을 놈아, 당치도 않은 거짓말을 하다니!」 「저주받을 놈은 내가 아니라 양고기라고 속여 가게 뒤에다가는 사람의 고기를 달아놓고 있는 놈이지」 그 뻔뻔스런 거짓말을 하는 늙은이가 밉살스러워 형은 말했습니다. 「네놈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돈이고 목숨이고 네놈에게 주고 말 테다」』 <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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