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기자]『이젠 족보에도 컬러사진을 넣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43년간 오직 외길로 족보만 출판해 온 회상사(回想社)의 박홍구사장(76·대전 중구 중동)이 소개한 족보 스타일 변화의 일면이다.
회상사는 전국 족보의 90% 이상을 펴내는 「족보원조」 출판사. 박사장이 족보 출판을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인 54년. 일제 식민치하에서 족보를 제대로 펴내지 못했던 문중, 전쟁통에 족보를 잃어버렸거나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이 뿌리를 찾아서 족보 붐을 일으켰던 것이 계기가 됐다.
족보에는 대동보(大同譜) 세보(世譜) 파보(派譜) 가승보(家乘譜) 등이 있지만 중시조부터의 직계 자손만 수록하는 파보가 일반적이다. 대동보나 파보를 1만∼2만부씩 찍는 문중도 있고 대부분 정기적으로 개정판을 내기 때문에 족보는 소리없는 장기 베스트셀러다.
『족보는 핏줄의 뿌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씨족사인데 씨족의 족보를 다 모으면 바로 우리의 역사가 되는 셈이지요. 단순히 책을 찍는 기능공이 아니라 역사를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파지(破紙)도 절대로 밟지 않는 것이 이 출판사의 근무수칙.
어릴때부터 한학을 익힌 박씨는 물론이고 1백20여명의 직원들도 웬만한 문중의 족보는 꿰뚫어 볼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남의 족보에 몰래 끼여들려는 사례도 족집게처럼 집어내기 때문에 종손시비를 가려달라는 부탁까지 들어온다.
또 내로라 하는 인사들도 박사장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족보 봉정식때는 그를 최상석에 모신다. 윤보선 전대통령은 『족보를 잘 만들어 달라』며 공장장에게까지 허리를 굽힌 적이 있다고. 회상사가 그동안 발간한 족보는 1천2백여 문중 5백여만권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