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사건의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부실투자와 부실대출이 일어난 경위에 대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한보사건의 본질과 의혹의 핵심은 권력층의 외압(外壓)이나 정경유착(政經癒着)이 없고서는 자기자본이 약한 기업의 철강산업진출과 거액의 편중대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한보철강의 투자규모를 결정적으로 불어나게 한 2차 설비의 기술도입 승인과 무리한 집중대출이 일어난 시기는 현정부 출범 이후다. 정부는 한보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정부 설명으로는 한보철강 사태가 근본적으로 사업의 타당성과 투자규모의 적정성, 그리고 기술의 효율성 등을 사전검토하고 투자과정을 관리한 책임기관이 없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기업의 투자계획을 정부가 승인하는 법적절차가 없고 다만 연간 30만달러 이상의 기술도입을 심사할 수 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더라도 엄청난 돈이 드는 기간산업은 신기술도입의 타당성을 국제전문기관에 의뢰하여 검증받은 뒤 허가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 국제적인 상식을 무시한 것이 당진제철소의 부실과 금융부실의 고리다. 통상산업부가 한보철강 사건에 책임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뿐만 아니라 한보철강 당진제철소의 설비규모와 투자액 등 많은 부분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한보측의 당초 발표로는 1차 설비에 1조5천억원, 2차 설비에 3조2천억원 등 지금까지 모두 4조7천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채권은행단이 제출받은 건설비는 당초 설명보다 9천억원이 적게 투입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투자관리 소홀로 비싼 제철소를, 그것도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 안으며 짓게 된 결과다.이부분에대해서도정부책임이크다.
사업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거액의 금융자금이 무리하게 편중대출된 데 대해 특히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보철강에 3조2천억원의 거액이 집중융자된 시기는 최근 2년간이다. 은행감독원이나 재정경제원 등 관련기관은 무엇을 근거로 대출추천을 했는가. 시중은행이 1백억원 이상의 거액대출을 하려면 정부 관계기관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금융계의 정설이다. 1백억원 이상 대출을 받으면 커미션만 5억원을 내놓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보의 부도위기설이 나돌던 지난해 9월에도 한보에 4천억원이 긴급융자되었는데 이같은 특혜성 자금이 은행장 개인결정으로 나갔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때문에 수조원의 융자에는 권력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모든 관련기관은 한보 금융부정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마치 은행의 실책으로 사건이 터진 것처럼 말하는 정부태도는 무능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자 직무유기다. 무모한 사업추진과 부실금융이 일어난 모든 경위 및 책임소재에 대해 정부의 자체조사와 진상규명이 없기 때문에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검찰수사와는 별도로 은행감독원 등 모든 기관의 책임을 정부 스스로 가리고 응분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정부책임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