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홍의 세상읽기]「애인」도 없는 남편

  • 입력 1997년 1월 13일 20시 44분


TV 연속극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지난 한 해는 「애인」의 해였다. 시청률도 높은 수치를 보였지만 주변에서 느끼는 것으로는 그 이상이었다. 어디를 가도 애인이야기이고 주부가 다른 남자에게 연애감정을 가지는 것이 당당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가운데에서 어디 적당한 애인 하나 만들 엄두도 못 내던 남편들은 내 아내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눈치만 보며 지냈다. 행여 선수를 친답시고 그들의 부도덕을 지적하다가는 경을 치기 십상이었다. 『누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좋대요. 그런 분위기가 좋고 애틋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이런 반발이 날아올 터인데 실제로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대꾸를 할 수 있을까. 성실하게, 사회와 가정에 대해서 그야말로 성실하게 살아온 평범한 남편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한 해였다. 남편들인들 왜 모를까. 「애인」의 주인공처럼 하는 것이 아내에게 점수 따는 좋은 방법이란 것쯤은 너무나 잘 안다. 다만 세태에 지치고 무엇보다도 애정의 표현을 억제하도록 배우고 자란 그 세대이기에 쑥스러워 못할 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몇 년 동안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붙어 지냈다. 사람들은 그 둘이 결혼을 할 걸로 알았고, 그들 자신도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어느 날 여자가 남자에게 물었다. 결혼하면 자기를 얼마 만큼이나 사랑해주겠느냐고. 남자는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콤한 대답을 기다렸던 여자는 내심 새침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얼마 뒤 그 둘은 결혼을 하고 정말 행복하게 살았다. 세월이 많이 흘러 나이가 들고 남자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얻었다. 여자는 숨을 거두어 가는 남자의 곁에 앉아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남자는 여자에게 젊은 시절의 그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는 동안 어떠했냐고? 이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만큼이었소. 그리고 나는 잠시도 당신에 대한 사랑을 잊어 본 적이 없다오』 남자들, 특히 우리 나라 남편들의 사랑은 이런 식이다. 당장에 저 하늘을 다 주겠다는 달콤한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 마음을 평생 동안 가슴에 담고 산다. 어디 연속극 속의 그 사람에 비할까. 속 깊은 남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면 아내들은 새해에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황 인 홍(한림대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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