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54〉
다리를 저는 아름다운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발코니 위의 처녀를 나는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그녀쪽에서도 나를 의식했던지 힐끔 내쪽을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보니 웬 낯선 남자가 돌걸상에 앉아 정신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지라 그녀는 서둘러 집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녀가 사라지자 나는 혼이 빠져버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우두커니 돌걸상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노예와 내시를 거느린 시의 법관이 나타나더니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처녀가 사라진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 법관이야말로 그 처녀의 아버지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수심에 잠긴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자리에 몸을 던졌습니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시녀들은 내 분부를 기다리며 둘러섰습니다. 그러나 나는 번민에 잠긴 얼굴을 하고만 있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녀들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차려와도 먹지 않고 잠자리가 마련되었지만 자지 않은 것이 며칠째가 되자 그녀들은 끝내 훌쩍훌쩍 울며 한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얼마후, 옛날에 나의 유모였던 노파가 그 소식을 듣고 나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노파는 나를 보자 첫눈에 눈치를 채고는 내 머리맡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도련님. 걱정말고 털어놓으세요. 어떻게 해서든지 도련님과 연분을 맺도록 힘써 볼테니까요. 그게 누구지요?」
노파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나오자 나는 자초지종을 털어 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난 노파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이구, 귀여운 도련님! 내 젖을 빨던 것이 엊그제만 같은데 상사병에 걸렸으니 세월은 참 빠르기도 하지. 그런데 우리 도련님을 상사병에 걸리게 한 그 처녀가 누군지 아세요? 그 처녀는 바그다드 법관의 따님인데 아버지가 엄중히 집에 가둬 두고 밖에 내보내질 않는답니다. 우리 바람둥이 도련님이 본 창문은 그 처녀가 사는 방 창문인데 아버지는 아래층 큰 방에 기거하면서 딸을 감시하고 있답니다. 따라서 처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낸답니다. 이따금 제가 찾아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에요. 그러니 제가 중간에 서지 않고는 도저히 그 처녀에게 접근할 수가 없답니다. 그러니 도련님, 도련님은 구원자를 만난 셈입니다. 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운을 내세요」
노파의 이 말을 듣자 나는 너무나 기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러한 내 모습이 귀여운지 노파는 한 차례 내 뺨을 쓰다듬어 주고는 돌아갔습니다. 그후로 나는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고, 집안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나는 노파가 무슨 좋은 소식을 갖고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노파는 몹시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글 : 하 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