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노총집회「이례적 열기 고조」

  • 입력 1996년 11월 24일 20시 17분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가 도입되면 당장 남편의 직장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요』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둔치. 5만여명의 근로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한국노총의 「노동악법 분쇄 및 총파업 투쟁 선언대회」에 은행원 남편을 따라 참석한 주부 김모씨(34·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말이다. 김씨는 『노동법이 어떤지 정확히는 몰라도 정리해고제가 법제화되면 하루아침에 남편이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데 걱정이 안될 수 없다』며 옆에서 구호를 외치는 남편을 근심스레 바라봤다. 노총 50년 역사상 최대 규모인 이날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노동법개정이 곧 자신과 가족들의 삶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어느때보다도 진지하고 격앙된 모습이었다. 형식적으로 구호 몇번 외치고 끝내던 과거 「어용 노총」시절의 집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특히 朴仁相(박인상)노총위원장이 『정부가 당초의 개혁약속은 외면한 채 변형근로제를 도입해 임금을 삭감하고 기업이 필요할 땐 언제든 노동자를 헌신짝 버리듯 해고시키는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며 12월중순 총파업 돌입을 선언하자 참석자들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대회장 뒤편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셔 얼굴이 붉어진 일부 나이든 근로자들은 사용자와 정부를 향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중소기업의 생산직 근로자라는 이재용씨(29)는 『사실 우리 회사의 어려운 형편에 총파업 동조는 생각도 할 수 없다』며 『하지만 복수노조를 허용하든 말든, 제삼자개입금지 조항을 삭제하든 말든 우리 근로자 생활은 변할 게 없는데 만약 그걸 대가로 정리해고제 같은 게 도입된다면 결국 근로자들만 큰 손해를 보는 셈』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둔치 둑방 위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경찰간부는 『국가경쟁력과 근로자생존권이라는 두대의 열차가 마주보고 달려오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李基洪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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