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이혼 현장르포]「버림받는 남편들」늘어간다

입력 1996-11-22 20:18수정 2009-09-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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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勳기자」 어느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다 조기명예퇴직을 한 K씨(45)는 최근 아내로부터 청천벽력같은 요구를 받았다. 「이혼하자」는 요구였다. 몇달 전 직장에서의 감원태풍 때문에 사표를 낸 뒤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 동안 K씨의 아내는 퇴직금으로 조그마한 식당을 열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직장을 그만둔 뒤로 아내와 몇차례 다툰 적은 있었지만 아내와 이혼을 해야할 정도로 큰 불화가 싹튼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K씨는 아내의 갑작스런 이혼요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내가 내세운 이혼사유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식당에서 일하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설거지나 집안청소 등 가사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일방적 이혼 요구 K씨는 아내에게 『당신의 이혼요구는 물론 두가지 이혼사유도 모두 납득할 수 없다』며 버텼으나 아내는 『정 그렇다면 이혼소송을 내겠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K씨부부는 일단 냉각기를 갖기 위해 별거를 하고 있는 상태지만 아내가 마음을 돌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있는 M씨(42)의 사례는 K씨보다 훨씬 심한 경우다. M씨는 아내가 직장에서 같이 일하는 다른 남자와 교제하고 있다는 낌새를 채고 『귀가시간이 자꾸만 늦어진다』며 몇번 경고성 잔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가출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몇차례 전화를 걸어와 이혼에 합의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이혼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M씨는 『모든 것을 용서할테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아내는 가출한 지 한달쯤 지나 이혼소송을 냈다. 아내가 낸 이혼소장을 받아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남편이 의처증이 심하며 이 때문에 매일같이 구박을 해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이 소송을 낸 이유였다. 이 소장에는 전치 2주의 상해진단서까지 첨부돼 있었다.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이 진단서를 보자 아내가 집에 찾아왔던 날 하도 화가 나 뺨을 몇 대 때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M씨는 이혼할 생각도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혼법정에 섰고 재판은 1년이상 지루하게 계속됐다. 다행히도 법원에서는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가출을 한 잘못이 있는만큼 이혼요구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법정을 나서면서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마음을 돌려 다시 함께 살기를 설득했으나 아내는 이를 거부하고 항소를 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위자료 5천만원을 내놓으면 항소를 포기하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혼을 당할 처지인 아내가 되레 돈까지 내놓으라는 말에 화가 잔뜩 치밀었으나 다시 이혼법정에 설 생각을 하니 끔찍하기만 했다. 아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이미 애정도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그는 고민끝에 위자료액수를 3천만원으로 깎은 뒤 이혼에 합의를 해주고 말았다. 요즘 이혼법정에서는 과거와 달리 남자쪽이 이혼의 일방적인 피해자가 되는 사례가 두드러지게 늘어나고 있다. ▼남편 상담전화 몰려 M씨나 K씨의 경우처럼 어느날 갑자기 아내로부터 이혼요구를 받고 재산도 가정도 송두리째 잃어버릴 위기에 빠진 버림받은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년에 갓 들어선 이들은 직장에서는 상사와 후배로부터 압력을 받고 가정에서도 아내는 사사건건 권리주장을 하고 자녀들은 아버지 뜻대로 되지않고 대화도 안된다. 남성들의 고민을 전문적으로 상담해주고 있는 「한국남성의 전화」(02―652―0458)에는 매일 이같은 고민을 털어놓는 남성들의 전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하루 평균 20통정도의 상담전화 중 대부분이 아내로부터 일방적인 이혼요구를 받은 경우다. 대법원이 펴낸 「사법연감」에 따르면 과거에는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낸 경우가 주류를 이뤘으나 86년을 정점으로 아내가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는 비율이 훨씬 많아졌다. 86년여자쪽의이혼청구비율이 53.4%로 더 많아지기 시작해 △90년 57% △93년 57.2% △94년 57% △95년 54%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중에는 남편이 가정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경우가 여전히 많지만 여자쪽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이혼소송을 낸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이러한 소송 중에는 남편이 아내의 귀가가 늦어지거나 다른 남자의 전화가 걸려오는 등 아내의 부정한 행위를 눈치채게 되면 남편의 폭행을 유도해 가출한 뒤 진단서를 끊어 이혼요구를 하는 「선제공격」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이처럼 남자가 이혼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 경제적 능력이 높아진데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정위원인 朴靑山(박청산)건대민중병원 신경정신과장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확대되고 있고 특히 지난 91년 재산분할권이 인정되면서 여성들의 이혼요구가 급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인식 크게 변화 남성들의 경제활동참여율이 63년 78.4%에서 95년 76.5%로 약간 줄어든 반면 여성은 같은 기간중 37%에서 48.3%로 10%포인트이상 증가했다. 대학교의 여학생비율도 65년 0.8%에서 95년 32.8%로 30여년동안 40배나 높아졌다. 비록 서구의 변화속도에 비하면 아직 더디지만 흐름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한국남성의 전화 李玉(이옥)소장도 『여성들은 경제력향상을 배경으로 해 결혼에 대한 인식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반해 남성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고방식 때문에 인식의 변화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며 『양성간의 인식변화의 속도차이가 갈등의 주요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金湘根(김상근)판사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70,80년대에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이혼당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며 『이 역시 여성의 경제적능력이 높아진 것이 주요한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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