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나라 먼나라]남태평양 부건빌島

  • 입력 1996년 10월 23일 20시 59분


「權宰賢기자」 남태평양의 작은섬 부건빌이 거센 풍랑에 흔들리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와 외로운 분리독립 투쟁을 벌인 부건빌을 평화의 물결로 이끌 등대 가 지난 12일 꺼져버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부건빌 과도정부 총리에 취임하면서 인구 20만의 부건빌섬에 평화를 정착시킬 인물로 기대를 모아온 테오도르 미륭이 지난12일자택에서 괴한 2명의 총격을 받고 숨진 것. 미륭은 부건빌혁명군(BRA)의 법 률고문이자 한때 직접 총을 들고 파푸아뉴기니군에 맞서 싸운 적도 있는 독립투사였 다. 그런 그가 피묻은 독수리 발톱을 접고 비둘기 깃털로 평화의 날갯짓을 시작한 배경에는 지난 8년간 1천명이 희생된 부건빌의 고통스런 현실이 있었다. 파푸아뉴기니의 줄리우스 찬 총리는 14일 미륭을 암살한 것이 「광기의 행위」라 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륭의 희망을 짓밟은 「배신행위」는 파푸아뉴기니 정부 자신 의 것이었다. 지난 6월 반군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펼친 파푸아뉴기니군은 그의 협상이 지지부 진하다는 빌미를 갖다 붙였다. 이를 격퇴하고 섬 남부와 중부를 장악하고 있는 반군 측도 그의 유화노선을 비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륭의 암살 배후로 파푸아뉴기니 군부와 반군이 동시에 거명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건빌 내전이 발발한 직접적 원인은 부건빌의 구리광산때문이었다. 88년 파푸아 뉴기니 정부를 등에 업고 마구잡이 채굴로 섬을 황폐화시킨 호주 구리채굴업체와 원 주민간의 보상협상이 결렬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비극의 씨앗은 75년부터 뿌려졌다. 75년 같은 호주의 위임통치령이던 파푸아뉴기니가 독립할 때 부건빌의 분 리독립의 요구는 묵살된 채 편입된 식민의 역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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