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역주 보던 해설자 “제 아들이 챔피언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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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결선… 英 와이트먼, 예상 뒤엎고 금메달
200m 남기고 우승후보 2명 추월, 메이저대회 메달 딴 적 없어 이변
올림픽-세계선수권 등 도맡아 20년 장내 해설 아버지도 깜짝놀라

영국의 제이크 와이트먼(왼쪽 사진 오른쪽)이 20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장내 해설자인 아버지 제프 와이트먼이 아들의 우승 모습을 지켜보며 “저 선수가 내 아들이자, 세계 챔피언”이라고 말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아래 사진은 제이크 와이트먼(가운데)과 아버지 제프(왼쪽), 어머니 수전 와이트먼. 사진 출처 제이크 와이트먼 인스타그램, 캐서린 메리 트위터
영국의 제이크 와이트먼(왼쪽 사진 오른쪽)이 20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장내 해설자인 아버지 제프 와이트먼이 아들의 우승 모습을 지켜보며 “저 선수가 내 아들이자, 세계 챔피언”이라고 말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아래 사진은 제이크 와이트먼(가운데)과 아버지 제프(왼쪽), 어머니 수전 와이트먼. 사진 출처 제이크 와이트먼 인스타그램, 캐서린 메리 트위터
제이크 와이트먼(28·영국)이 20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결선에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자 대형 전광판에 갑자기 장내 해설자 얼굴이 나왔다. 해설자는 “아, 카메라가 왜 저를 비추는지 말해야겠네요. 저 선수가 제 아들입니다. 이제는 세계 챔피언이고요”라고 말했다. 아버지 제프 와이트먼(62)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에서 20년 넘게 장내 해설을 도맡고 있는 베테랑 해설자다.

이날 1500m 레이스는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겼을 때까지만 해도 선두 경쟁을 벌이던 티머시 체루이요트(27·케냐)와 야코브 잉에브릭트센(22·노르웨이)에게 시선이 쏠려 있었다. 체루이요트는 2019년 세계선수권 챔피언이고, 잉에브릭트센은 지난해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그런데 마지막 200m를 남기고 와이트먼이 둘을 차례로 앞지르더니 개인 최고기록인 3분29초23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와이트먼은 우승한 뒤에도 한동안 쩍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이제껏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메이저 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영국 연방 국가들이 참가하는 ‘커먼웰스 게임’과 유럽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딴 게 최고 성적이다. 와이트먼은 “지금도 못 믿겠다. 늘 동메달이었는데 금색이라니”라며 “모두가 이런 세계무대 금메달을 꿈꾸며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그게 얼마나 힘든지도 깨닫게 된다”며 “커리어를 꼭 세계대회 메달로 마치고 싶었는데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영국 선수가 세계선수권 남자 1500m에서 1위를 한 건 1983년 제1회 헬싱키 대회의 스티브 크램 이후 39년 만이다.

도쿄 올림픽 메달리스트 3명이 모두 출전한 이날 결선에서 와이트먼은 스스로도 메달은 기대하지 않았다. 경기 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도 21일로 예정된 메달 시상식 바로 1시간 뒤로 예약해 놨을 정도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세계육상연맹(WA)이 시상식 시간을 결선 레이스 당일로 앞당기면서 와이트먼은 예약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와이트먼은 역시 아버지가 장내 해설을 했던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도 결선 무대를 밟았지만 10위에 그쳤다. “못해도 4∼6등은 할 줄 알았는데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던 그는 올림픽 경기를 마치자마자 아버지와 훈련법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마라톤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은퇴 후 육상 장내 해설과 아들의 코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이후 와이트먼은 5km,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며 지구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겨우내 집중한 장거리 훈련은 마지막 200m 구간에서 폭발적인 스퍼트를 낼 수 있는 힘으로 돌아왔다. 와이트먼의 어머니도 마라톤 선수였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다.

아버지가 해설한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소감을 묻는 질문에 와이트먼은 “(아버지 해설은) 너무 익숙해서 별 차이는 없다. 다만 도쿄에서는 내가 너무 못해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를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챔피언이라고 불리게 돼 기쁘다”고 했다. 아버지는 시상식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금메달리스트, 영국-북아일랜드의 대표 제이크 와이트먼입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제이크 와이트먼#세계육상선수권 남자 1500m 결선#1위#해설자#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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