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에 조목조목 답했던 벤투호, 축구는 한일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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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18일 22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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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 황인범이 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9.12.18/뉴스1 © News1
18일 오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 황인범이 골을 넣고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9.12.18/뉴스1 © News1

‘허울만 좋고 효율성 떨어지는 점유율 축구다’, ‘선수들의 간절함, 투쟁심이 떨어졌다’, ‘국내파로는 한계가 있다’ ‘결정력이 부족하다’ ‘수비불안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약속된 세트피스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축구대표팀을 향해 쏟아졌던 비난의 주된 내용들이다. 벤투 감독이나 선수들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점들도 있겠으나 그렇다고 없는 것을 지어낸 소설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아무래도 한수 아래로 여겨지는 팀들과의 대결이 연이은 졸전으로 끝난 10월(북한 0-0), 11월 월드컵 2차예선(레바논 0-0)에 이어 동아시안컵 1, 2차전마저 개운치 않은 승리로 끝나자 팬들의 볼멘소리도 더 커졌다. 그래서 대회 최종전으로 펼쳐지는 한일전은 너무도 중요했다. 이겨야했고 그것도 잘 이겨야했는데 벼랑 끝에서 선수들이 최상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대표팀이 18일 오후 7시30분부터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펼쳐진 일본과의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 3차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대회 3연패, 대회 사상 첫 개최국 우승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2000년 이후 19년 만에 안방에서 거둔 한일전 승리라 더 값졌다.

한국과 일본 나란히 2연승을 기록한 채 최종전에 나섰다. 한국은 1차전에서 홍콩을 2-0으로 잡았고 2차전에서는 중국을 1-0으로 꺾었다. 일본은 중국을 2-1로, 홍콩은 5-0으로 제압했다. 승점은 같으나 일본이 골득실(+6)에서 한국(+3)에 앞서고 있었기에 한국으로서는 필승만이 대회 3연패를 달성할 수 있는 길이었다. 일본은 무승부 이상이면 정상에 설 수 있었다.

벤투 감독도 공격적인 포석을 뒀다.

이정협을 원톱 스트라이커로 배치하고 2선에 나상호, 황인범, 손준호, 김인성을 배치했다. 그 아래 주세종이 전체적으로 경기를 조율하는 임무를 맡았다. 평소 중앙MF를 2명 내세우는 것을 선호했던 벤투 감독이지만 이날은 원 볼란치에 가까웠다. 수비라인은 김진수-김민재-김영권-김태환이 포백을 구성했고 김승규 골키퍼가 수문장으로 나섰다.

경기는 초반부터 빠르고 거칠게 진행됐다. 앞선 공격수들은 높은 지점부터 공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 한국의 소유였을 때는 통상적인 벤투호의 모습과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공을 전진하는 빌드업 축구를 선호했으나 이날은 단계를 많이 생략했다. 최후방 센터백 김민재가 수비형MF 주세종이 좌우로, 혹은 이정협을 바로 노리고 박스 안으로 투입하는 롱패스 빈도가 많았다.

한국이 주도했던 경기다. 측면 활용, 중앙 돌파, 중거리 슈팅, 코너킥 세트피스 등으로 일본은 계속 괴롭혔다. 골에 근접한 장면들도 나왔다. 전반 8분 코너킥 상황에서 김민재의 헤딩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혔고 24분 코너킥 상황에서는 경합을 벌이던 일본 선수 맞고 옆 기둥을 때렸다.

‘골대 불운’이 떠올려질 때 황인범의 대포알 슈팅이 일본 골망을 흔들었다. 황인범은 전반 28분 수비수 1명을 속여 공간을 확보한 뒤 과감한 왼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해 선제골을 터뜨렸다. 속이 뻥 뚫리는 득점을 성공시킨 뒤 황인범은 A보드를 뛰어넘어 한국 팬들과 일본 원정 팬들이 모여 있는 관중석 앞에서 세리머니를 펼쳤다. 통쾌한 뒤풀이였다.

이후에도 한국은 경기를 완벽히 장악하면서 아시아드주경기장에 모인 팬들의 환호를 끌어냈다. 일본대표팀이 내년 도쿄올림픽을 대비, 어린 선수들이 많이 가세했다고는 하지만 중국, 홍콩전의 답답함과는 확실히 다른 퍼포먼스였다. 선수들 모두 빛났다.

18일 오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 황인범이 골을 넣고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9.12.18/뉴스1 © News1
18일 오후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풋볼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한국 황인범이 골을 넣고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19.12.18/뉴스1 © News1

이정협은 그저 많이만 뛰는 공격수가 아니라 제대로 포스트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스트라이커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가 높이 솟구쳐 공의 방향을 바꾼 것, 수비를 등지고 공을 간수하다 연결한 것이 여러 번이다. 좁은 공간에서 빛을 발하는 나상호의 기민한 움직임과 이번 대회 한국의 첫 필드골을 터뜨린 황인범은 왜 벤투가 팬들의 비난 속에서도 계속 기용하는지 보여줬다.

수비진의 맏형 김영권이 박스 안에서 공만 거둬내던 슬라이딩 태클, 수비라인의 기둥 김민재가 시종일관 상대 공격수를 무력화 시키던 모습은 든든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앞에서 좌우로 ‘대지 가르기’ 패스를 뿌려대던 주세종은 ‘기성용 판박이’였다.

상대의 압박 속에서도 빌드업 과정은 많이 세련돼졌고 필요할 때 멀리 날아가던 롱패스도 확률 높았다. 한국 축구의 취약부분이던 세트피스도 크게 향상됐다. 특히 후반 22분 모두가 박스 안 선수들에 집중할 때 후방에 있던 김진수 머리 앞으로 배달됐던 주세종의 킥은 완벽한 약속이었다. 벤치에 있던 모두가 펄쩍 뛰었을 정도로 잘 준비된 세트피스였다.

오랜만에 흡족한 경기 내용이 나왔다. 추가골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으나 팬들이 아주 오랜만에 웃으며 축구를 즐겼다. 한일전처럼만 축구하면 성적도 낼 수 있고 팬들 많이 찾아올 수 있다.

(부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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