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은 선수의 의지를 표현하기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다. 갑작스럽게 짧아진 머리카락은 단호함을 뜻한다. 팬들은 정규시즌 중 연패에 빠진 팀 선수들이 삭발 투혼을 보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머리를 기르는 선수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장발을 고집하는 선수가 받는 주목도가 매우 크다.
SK 김광현(29)은 마무리캠프를 마친 뒤 귀국한 인천국제공항 현장에서 수많은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단순히 ‘에이스’의 귀국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 밑까지 내려오는 장발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즌 중 항상 짧은 머리를 고수한 그이기에 갑작스러운 긴 머리는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다.
귀국 이후에도 장발 고집은 계속됐다. 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프로야구선수협회 주최 유소년클리닉 ‘2017 빛을 나누는 날’ 현장에는 여전히 ‘장발’의 김광현이 서 있었다.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어린 유망주들을 지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김광현은 “머리카락은 계속 기를 생각이다. 첫 등판 이후 자를 계획인데, 계산해보니 아직 4개월 정도 남았더라”고 말했다. 이미 복귀 등판을 머리 속에 염두해두고 있는 눈치였다.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은 이후 1년에 가까운 공백기간. 이제 복귀 날짜를 계산하는 것이라면 지긋지긋할 정도다.
몸 상태와 관련해 그는 “80~90% 정도까지 올라왔다. 팬들께서 걱정해주시는 만큼 나도 조심스럽게 재활에 임하고 있다.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으로 마운드에 서고 싶다”고 했다. 장발과 관련해서는 여러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혹 재활과 관련된 징크스냐는 질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특별히 의미를 두지 않고 기르기 시작했다. 다만 첫 등판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기르는 게 이제 일상이 됐다”고 답했다.
의지는 강력했으나 덕분에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여럿 생겼다. 함께 행사에 참여한 팀 동료 김강민은 김광현을 향해 “야! 장첸(영화 ‘범죄도시’ 속 인물) 빨리 빨리 안 올래?”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김광현은 “(김)강민이 형이 너무 잔인한 별명을 붙여준 것 같다(웃음)”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름의 고충도 함께 고백했다. 그는 “여성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다. 매일 매일 머리카락을 말리는 게 일이다. 앞머리도 눈을 찔러 꽤나 신경 쓰이는 게 많다”고 웃으며 말했다. 첫 등판을 위한 ‘의지의 여정’이 여간 쉽지만은 않은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