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박기원 감독은 24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V리그’ 우리카드전을 앞둔 인터뷰에서 의외로 많은 말을 전했다. 우승후보라는 예상에 걸맞지 않은 현 상황을 견디는 심경을 밝힌 것이다.
박 감독은 “이럴 때일수록 훈련량을 줄인다. 상황을 더 무겁게 만드는 말도 아낀다. 선수들은 열심히 하고 있다. 감독이 답을 찾아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적, 전술적 부분이라면 차라리 쉽다. 마음의 문제, 곧 스트레스에 선수단 전체가 짓눌려 있기에 상황이 복잡하다. 역설적이게도 대한항공의 어려움은 승리가 약이다. 원인이 해결되어야 결과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나오면 원인은 자연 치유되는 순서다. 일단 이겨야 실타래가 풀리기에 더 난해했다.
24일 우리카드전에 나타난 대한항공 선수단은 자못 비장했다. 세터 한선수를 제외하면 머리 염색을 했던 선수가 사라졌다. 정지석, 조재영 등은 헤어밴드를 풀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만약 오늘도 지면 삭발하는 선수도 나올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 감독은 곽승석과 정지석을 선발 레프트로 투입했다. “수비에 더 집중하겠다”는 의지였다. 실책을 줄이겠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대한항공은 이날 1세트 0-5까지 밀렸다. 박 감독은 이례적으로 0-3에서 첫 번째 작전타임을 썼다. 그리고 세터 한선수를 뺐다. 황승빈이 대신 들어갔다.
절망적이었던 흐름은 중반 이후 변했다. 대한항공 블로킹은 우리카드 레프트 최홍석을 틀어막았다. 외국인선수 가스파리니는 V리그 역사상 최초로 1세트에서 트리플크라운(서브-블로킹-후위공격 3점 이상)을 달성했다.
대한항공은 5점 차 열세를 딛고 1세트를 28-26으로 역전했다. 마지막 28점은 가스파리니의 서브 점수로 나왔다. 가스파리니의 해결사 능력이 되살아나자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세트스코어 3-0(28-26 26-24 25-20)으로 승리했다. 2연패를 끊고 승점 16(5승6패)이 됐다.
박 감독은 경기 후 “나부터 바꾸려 했다”고 말했다. 일부러 심판 판정에 격한 제스처도 취했다. 선수들을 집중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한숨 돌린 대한항공은 다음주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를 만난다. 고비에서 대한항공은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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