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발 ‘핏빛 투혼’ 안슬기, 2시간32분15초 국내 여자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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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7회 동아마라톤]
자신을 넘었던 그 자리서, 1년만에 또 성장… 20km서 왼발, 35km서 오른발 물집
허벅지 부상 인한 연습 부족도 극복… 자신의 최고기록 4분 가까이 단축
감독 “악바리 투혼, 대회때마다 성장”… 여자부 전체 1위는 케냐 로즈 첼리모

레이스 도중 양 발바닥에 물집이 터지는 부상을 입은 안슬기가 레이스가 끝난 뒤 치료를 받고 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레이스 도중 양 발바닥에 물집이 터지는 부상을 입은 안슬기가 레이스가 끝난 뒤 치료를 받고 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결승선을 통과한 뒤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안슬기(24·SH공사)가 갑자기 고통을 호소했다. 발바닥이 아파 신발을 벗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신발을 벗자 피로 붉게 물든 양말이 보였다. 피가 말라붙은 양말은 물을 부은 뒤에야 발바닥에서 떨어졌다. “어휴, 저렇게 아픈데…, 참고 뛰었구나”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안슬기는 “20km쯤 달렸을 때 왼발에, 35km 부근에서는 오른발에 물집이 생겼지만 꾹 참고 뛰었다”고 말했다.

양발에 물집이 터지는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한 안슬기는 20일 열린 2016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7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32분15초의 기록으로 국내 여자부 1위(전체 7위)를 차지했다. 자신의 기존 최고 기록(2시간36분14초)을 4분 가까이 앞당긴 그는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자고 생각했다. 2시간 32∼33분 사이에 결승선을 통과하자는 목표를 이뤄 기쁘다”고 말했다. 안슬기는 지난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웠던 자신의 최고 기록을 1년 만에 같은 대회에서 갈아 치웠다. 그는 “서울국제마라톤은 두 번이나 나의 한계를 뛰어넘은 대회이기 때문에 더욱 뜻깊다. 부상 등으로 좌절할 때마다 내게 자신감을 심어준 대회”라고 말했다.

안슬기는 스무 살 때부터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이 잦아 선수 생활 중단까지 고민했다. 그는 “지난해 말에도 오른쪽 햄스트링이 아파서 제주 동계훈련 때 풀코스를 대비한 훈련을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서울국제마라톤에 참가하지 않는 것도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부상 부위의 상태가 좋아지며 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안슬기는 “2월 경기국제하프마라톤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컨디션이 좋아졌다. 예전에 좋은 추억이 있는 서울국제마라톤을 뛰기로 결심한 만큼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이성복 SH공사 육상선수단 감독(52)은 “안슬기는 ‘악바리 정신’을 가진 선수”라며 “도전 정신도 강하기 때문에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대회를 거듭할 때마다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슬기는 휴대전화에 격려 문구 등을 담아두고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했다. 현재 그의 휴대전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도전에 성공하는 비결은 하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는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성격이다. 한 번의 성공에 만족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말했다.

서울체고 시절 장애물 경기 선수였던 안슬기는 2013년 이 감독의 권유로 마라톤 선수가 됐다. 2013년 대구국제마라톤에서 10위를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그는 중앙서울국제마라톤(2014년), 전국체육대회(2015년) 등에서 1위에 올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발전 성격도 있는 이번 대회에서 국내 여자부 최고 자리에 오른 안슬기는 “좋은 기록으로 우승해 경쟁자들과의 싸움에서 한발 앞선 느낌”이라며 “여자 마라톤의 침체기라는 말을 사라지게 만든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여자부 전체 우승은 로즈 첼리모(케냐·2시간24분14초)가 차지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2016서울국제마라톤#제87회 동아마라톤#안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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