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인디언 기우제와 심수창의 1승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5월 8일 05시 45분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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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100% 비가 온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피식’ 웃게 되는 유머 같지만, 미국 애리조나 사막지대에 사는 호피 인디언들의 순결한 삶의 태도에 관한 얘기다. 누가 봐도 농사짓기에는 부적합해 보이는 척박한 사막. 그럼에도 인디언들은 그 땅에 씨앗을 심는다. 그리고는 정성껏 기우제를 지낸다. 비는 쉽사리 오지 않지만, 이들은 하늘을 원망하거나 신이 자신들의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인디언들이 생각하는 ‘비가 오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바로 자신들의 ‘정성 부족’이다. 이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반드시 비가 올 것이라는 희망으로 더더욱 정성껏 기우제를 지내는 것뿐이다. 결국 언젠가는 하늘에서 비를 내리고, 씨앗은 땅 위에 싹 트기 시작한다.

언뜻 무모해 보이고 우스꽝스러운 미신 같지만, 이는 호피 인디언들이 사막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고지순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하버드대학 ‘그랜트 스터디’의 연구 주제가 된 ‘인디언 기우제’는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롯데 심수창(34·사진)은 요즘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 있다. 이겨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기지 못해 주목 받고 있다. 스스로도 “올 시즌 무승 투수인데 이래도 되나”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한때는 국가대표 투수, 한때는 10승 투수. 그에게도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불운의 아이콘’, ‘패전의 상징’이 돼버렸다. 그는 LG 시절이던 2009년 6월 26일 문학 SK전부터 넥센 시절이던 2011년 8월 3일 대구 삼성전까지 18연패를 기록해 프로야구 사상 최다연패 신기록을 썼다. 지독한 연패의 사슬을 끊어낸 것도 잠시. 또 다시 기나긴 연패가 그를 에워싸고 있다. 넥센 유니폼을 입고 2011년 8월 27일 목동 롯데전에서 승리한 것이 마지막 승리의 추억이다. 이후 롯데 유니폼을 입은 지금까지 1300일 넘게 승리와 담을 쌓으면서 10연패를 기록 중이다.

심수창이라면, 얼굴만큼이나 예쁜 투구폼을 가졌던 우완 정통파 투수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이단 변신 투구폼을 가지고 팬들 앞에 나타났다. 비틀고, 꼬고, 이따금 팔까지 옆으로 내려서(스리쿼터) 악을 쓰며 던지는 모습은, 잘 생긴 멜로 영화의 주인공이 코믹 시트콤 배우로 변신해 우리 앞에 등장한 것만큼이나 어색하다.

“처음엔 저도 창피했죠. 지난해 2군 경기에서 옆으로 던질 때, 상대팀 선수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심수창이 어떡하다 저렇게 망가졌느냐’, ‘마지막 발악을 하는구나’라고 수군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옆으로 던지면서 구속이 늘었어요. 그때 생각했죠. 그래, 내 야구인생 마지막 모험이라고. 이렇게 던져도 안 되면 끝이라고.”

절벽에 마주 서니 용기가 났다. 남들 눈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존. 폼이 망가지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절절한 몸부림. 다시 공을 쥐고 1군 마운드에 선 지금 이 순간이 그는 행복하다.

“작년에 은퇴하겠다고 했을 때, ‘도망가지 말라’며 말렸던 친구들한테 제가 요즘 이렇게 말해요. 도전하겠다고. 18연패 기록을 내가 다시 깨도 상관없다고. 그래도 창피하지 않다고. 이길 때까지 던지겠다고.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고.”

그는 이제 먼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리 좌절하지 않겠다고 했다. 비가 올 때까지 두 팔 벌려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의 도전, 그리고 승리가 올 때까지 온 몸을 비틀어 공을 던지는 심수창의 도전. 가치 없는 도전은 없다. 때로는 도전의 과정이 성취의 결과물보다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언젠가는 승리의 비가 심수창에게도 촉촉하게 내릴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를 응원한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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