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ML 단장 열전] ‘밤비노 저주’ 깬 엡스타인…염소의 저주도 깰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1월 25일 06시 40분


28세 나이로 레드삭스 최연소 단장 파격
부임 2년째 86년간의 저주깨고 WS 우승
2011년 컵스행 새 도전 불구 부진 연속
매든 감독 영입…‘106년만의 우승’ 관심

지난 2002년 11월 25일, 보스턴 레드삭스는 야구계를 충격에 빠트릴 만한 소식을 전했다. 마이크 포트 임시 단장을 대신해 테오 엡스타인을 신임 단장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연소 단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엡스타인이 단장으로 부임한 지 2년째인 2004년, 레드삭스는 86년간 이어져 온 ‘밤비노의 저주(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시킨 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한 불운을 이르는 말)’를 깨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3년 후인 2007년에도 레드삭스가 정상을 차지하자 엡스타인의 주가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엡스타인은 2011년부터 시카고 컵스로 팀을 옮겼다. ‘밤비노의 저주’를 푼 엡스타인의 매직이 ‘염소의 저주(시카고 컵스가 1945년 디트로이트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 때 홈구장에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도 관중이 입장을 거부당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으리라”고 저주를 퍼붓고 떠난 뒤 한 번도 월드시리즈서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도 극복해 주기를 원하는 시카고 팬들의 기대를 과연 충족시킬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엄친아

엡스타인은 1973년 12월 29일 뉴욕에서 출생했다. 브루클린고등학교 재학 시절 잠시 야구를 했던 그는 뉴욕 태생이면서도 레드삭스를 동경하던 소년이었다. 그는 작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조부인 필립 엡스타인과 작은 할아버지 줄리어스 엡스타인은 1942년 영화 ‘카사블랑카’로 아카데미 희곡상을 수상했다. 아버지 레슬리 엡스타인은 유명한 소설가로 현재 보스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여동생 애냐 엡스타인은 방송 극작가 겸 프로듀서(PD)로 활동 중이다. 명문 예일대학으로 진학한 엡스타인은 학교 신문 '예일 데일리 뉴스'의 스포츠 담당 편집자로 활동했다.

● 래리 루치노와의 운명적인 만남

1997년 대학을 졸업한 그의 첫 직장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홍보팀에서 일을 하게 된 그의 직속상관은 바로 래리 루치노(현 레드삭스 대표)였다.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루치노는 까마득한 동문 후배인 엡스타인을 늘 곁에 두고 살갑게 대했다. 엡스타인은 파드리스 홍보 이사로 재직하면서 샌디에이고대학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기도 했다.

2003년 11월 15일 파드리스를 떠나 레드삭스의 최고 경영자로 영입된 루치노는 엡스타인을 단장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구단 일과 학업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해 낸 그의 탁월한 능력을 인정한 결과였다. 1918년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레드삭스의 불운을 명석한 두뇌를 지닌 엡스타인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 거침없는 행보

20대의 초보 단장이었지만 엡스타인은 팀 체질 개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활약하다 FA(프리에이전트) 신분을 획득한 데이비드 오티스와 플로리다 말린스의 강타자 케빈 밀라를 영입해 중심타선을 보강했다. 2001년 랜디 존슨과 함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던 우완 강속구 투수 커트 실링과 계약을 체결해 에이스 역할을 맡겼다. 이들이 주축이 된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숙적 양키스에게 3연패를 당한 뒤 4연승을 거뒀고, 월드시리즈에서 토니 라루사 감독이 이끌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4경기 만에 물리치고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1919년부터 시달리던 ‘밤비노의 저주’를 푼 것이다.

● 사퇴 파동

2005년 10월 31일, 엡스타인은 구단에서 제시한 3년간 150만 달러의 조건을 뿌리치고 개인적인 이유를 들어 단장직을 사임한다고 선언했다. 레드삭스 팬들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지역신문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은 “단장이라는 직책은 영혼을 모두 쏟아 부어야만 한다. 지금까지 내 삶을 되돌아 본 결과 더 이상 모든 것을 걸고 일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가 사퇴를 발표한 날은 공교롭게도 할로윈이었다. 수많은 기자들을 피하기 위해 고릴라 분장을 한 엡스타인은 유유히 펜웨이파크를 빠져 나갔다. 이듬해 1월 레드삭스 구단은 엡스타인에게 단장 외에도 수석 부사장이라는 직함까지 안겨줘 그의 사퇴 파동은 두 달여 만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2007년 월드시리즈에서 레드삭스가 콜로라도 로키스를 4경기 만에 스윕하고 또 다시 정상을 차지하자 레드삭스는 엡스타인과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 새로운 도전

레드삭스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엡스타인은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1908년 이후 우승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시카고 컵스로 둥지를 튼 것이다. 2011년 10월 컵스는 엡스타인을 구단 운영 사장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조건은 5년간 1850만 달러로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다. 단장은 파드리스 출신인 제드 호이여에게 맡겼다.

하지만 팀 성적은 개선되지 않았다. 컵스는 2012년 61승을 올리는 데에 그쳐 30개 팀 가운데 29위에 머물렀다. 이듬해에도 66승으로 내셔널리그 최하위의 수모를 안았다. 2014년에는 73승을 따내 엡스타인이 부임한 후 가장 좋은 성적을 냈지만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두 명의 감독(데이브 스웨임, 릭 렌테리아)을 해고한 엡스타인은 내년 시즌 지휘봉을 조 매든 감독에게 맡겼다. 레드삭스 시절 그를 괴롭혔던 팀은 전통의 라이벌 뉴욕 양키스와 신흥 강호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열악한 구단 사정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매든 감독이 레이스와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자 속전속결로 그를 영입한 것이다.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1908년. 특히 컵스는 1945년 이후 지독한 ‘염소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무려 106년 동안 지속된 우승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 꺼내든 엡스타인의 승부수는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