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최다홈런 기록 깨진’ 양준혁의 축하편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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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방망이 돌리던 승엽아
400… 500홈런, 야구사 계속 쓰길”

이승엽(왼쪽)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소속이던 2011년 스프링캠프에서 이승엽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양준혁 해설위원. 동아일보DB
이승엽(왼쪽)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소속이던 2011년 스프링캠프에서 이승엽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양준혁 해설위원. 동아일보DB
승엽아, 축하한데이.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한국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은 원래 네 것이었다. 네가 8년간 일본에서 뛰는 동안 내가 잠시 맡아두고 있었을 뿐이지.

올해 타격감이 안 좋아 맘고생이 심했을 거다. 그 심정 내가 잘 안다. 그래도 이렇게 거뜬히 이겨낼 줄 알았다. 내가 10년 넘게 봐 온 이승엽은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보란 듯이 일어나는 선수니까.

한때 너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잘나가는 스타였지만 네가 프로에 입단한 뒤로는 항상 네 그림자에 가려 있었다. 1998시즌이 끝나고 내가 정든 삼성 유니폼을 벗고 해태로 트레이드된 것도 너 때문이었다. 같은 왼손 타자에 같은 포지션. 그런 경우라면 2명이 한 팀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결국 2인자인 내가 밀렸지. 당시엔 충격이 너무 컸고, 원망도 많이 했다.

그래도 널 인정하지 않을 순 없었다. 덩치도 작고, 투수로 입단해 타자 경력도 오래되지 않았지만 펑펑 홈런을 때려내는 네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때 이미 난 깨달았다. 너는 내 라이벌이 될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2002년 다시 삼성으로 돌아온 뒤 또 한 번 네게 놀랐다. 그때까지 난 누구보다 야구를 좋아한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야구를 가장 사랑하는 선수는 바로 너였다. 순한 얼굴이었지만 10번 잘 치다가 한 번 못 쳐도 너는 확 돌았지. 텅 빈 야구장에서 새벽 두세 시까지 방망이를 돌리던 네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넌 야구를 사랑하는 만큼 노력했고, 그래서 꼭 이겨냈다.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너일 거다. 나이 어린 선수에게 뭔가를 배워야겠다고 느낀 건 네가 처음이었다. 2002년 스프링캠프 때 네가 타격 폼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내가 “너 바보냐”라고 했던 거 기억할지 모르겠다. 1999년 54개, 2000년 36개, 2001년 39개 홈런을 쳤는데 뭐가 아쉬워서 타격 폼을 바꾸는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중에 후회하니까 절대 바꾸지 말라”고 하니까 너는 그냥 씩 웃고 말았지. 그런데 넌 2002년 47홈런에 이어 2003년에는 한 시즌 아시아 신기록인 56호를 쏘아 올렸지.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을 때 난 너를 떠올렸다. 널 생각하면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각종 타격 기록을 경신한 뒤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네 덕분이었다. 나는 네 선배고, 항상 너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만 너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한 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너를 인정하고, 너의 노력을 받아들이는 순간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승엽아, 지금 이 순간도 353호, 354호 홈런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을 승엽아. 앞으로 네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400홈런, 500홈런도 쳐 줬으면 좋겠다. 오래 선수 생활을 하면서 팬들에게 큰 기쁨을 줬으면 좋겠다. 내게 넌 영원한 스승이다.

정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양준혁#최다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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