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제10구단]군산상고·쌍방울의 추억… 제2의 야구붐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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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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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의 꿈 간직한 ‘전북’

군산상고 선수들이 1972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부산고에 9회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위). 쌍방울 팬들이 ‘어린왕자’로 불린 에이스 김원형의 사진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군산상고 선수들이 1972년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에서 부산고에 9회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위). 쌍방울 팬들이 ‘어린왕자’로 불린 에이스 김원형의 사진을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약 3만의 관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야간경기로 벌어진 군산상고와 부산고의 결승전은 9회말 4-1로 리드당한 군산상고가 끈질긴 추격전으로 극적인 역전승(5-4)을 엮는 파란만장의 연속이었으며 야구사상 일찍이 보기 드문 기사회생의 산표본이기도 했다” (동아일보 1972년 7월 20일자 1면)

이보다 짜릿한 역전승이 있을까? 뜨거웠던 1972년 여름. 군산상고는 제26회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전통의 강호 부산고와 만나 9회말 극적인 대역전극을 펼쳤다. 40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끝내기 안타 한 방. 이 한 경기로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가 됐다. 이날 경기에서 부산고는 8회 1-1의 팽팽한 균형을 무너뜨리며 승리를 거머쥐는 듯했다. 톱타자 전현동의 2루타를 시작으로 6안타를 몰아쳐 석 점을 달아난 것.

그러나 군산상고에는 운명의 9회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두로 나선 6번 김우근이 우전 안타를 치며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계속된 1사 만루 기회의 기회, 톱타자 김일권이 몸에 맞는 공으로 밀어내기 타점을 올렸다. 타석에 들어선 다음 타자 양기탁은 풀 카운트 접전 끝에 2타점 중전 안타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3만여 관중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명의 타석에 선 주인공은 3번 김준환이었다. 투 스트라이크 노 볼. 타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볼카운트. 김준환의 방망이가 허공을 힘차게 갈랐다. ‘깡’. 내야를 벗어난 공은 좌익수 앞에 떨어졌다. 부산고 3루수 김문희는 다급한 마음에 2루 주자가 홈으로 쇄도하는 것을 방해했다. 심판은 주루 방해에 의한 안전 진루 판정으로 2루 주자의 득점을 인정했다. 군산상고의 결승점이었다. 그 순간 머리에 수건을 동여맨 군산시민응원단은 일제히 운동장으로 달려 나왔다. 응원단과 선수들은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최관수 감독의 눈물어린 일화가 화제가 됐다. 최 감독이 군산상고를 처음 맡은 1971년 추석 때였다. 일부 선수들이 술을 마시고 동네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었다. 학교는 관련 선수들을 처벌하기로 했다. 그때 최 감독이 나섰다. “감독에게 모든 처리를 맡겨 달라”고. 그러고는 선수들에게 방망이를 나눠 준 뒤 “내가 잘못 지도한 결과다. 너희가 나를 때리지 않는다면 나는 이곳을 떠나겠다”고 호통을 쳤다. 25명의 선수는 엉엉 울면서 최 감독의 엉덩이를 방망이로 때렸고, 바로 그때 사제간의 뜨거운 눈물 위에서 군산상고의 신화는 태동했다. 군산상고가 만든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는 1977년 ‘고교결전 자! 지금부터야’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군산상고가 지핀 호남 야구의 열기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창단한 해태 타이거즈로 이어졌다. 광주를 연고로 하는 해태에 이어 1990년에는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쌍방울이 창단했다. 이듬해인 1991년 1군 무대에 발을 디딘 쌍방울은 빙그레와의 첫 경기에서 11-0으로 대승을 거두며 파란을 일으켰다.

쌍방울은 첫해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공동 6위에 올랐지만 이후 5년 동안은 리그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쌍방울에 짧은 봄날이 찾아왔다. 김 감독의 혹독한 조련으로 쌍방울은 126경기에서 70승을 거두며 2위로 1996년 시즌을 마감했다. 이듬해엔 김현욱과 김기태라는 ‘투타 쌍방울’이 활약하면서 71승을 달성했다. 김현욱은 중간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나서 20승으로 최다승 타이틀을 따냈고, 김기태는 26홈런에 2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며 타격왕(0.344)에 올랐다.

쌍방울의 봄은 외환위기와 함께 끝났다. 모기업이 재정난을 겪던 1998년 쌍방울의 성적도 6위로 곤두박질쳤다. 김현욱과 김기태까지 삼성으로 넘긴 뒤 치른 1999년 마지막 시즌에는 28승 97패 7무라는 참혹한 기록을 남긴 채 쌍방울은 아련한 추억으로 사라졌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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