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서장훈 “꺾인건 실력이 아니라 성질… 예전 기량 보여주고 떠나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 여섯 번째 팀 KT서 마지막 시즌 준비하는 서장훈

KT 서장훈은 어느 때보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13일 개막하는 프로농구 2012∼2013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서장훈이 4일 수원 KT 올레 빅토리움 체육관에서 25년간 함께해온 농구공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는 올 시즌 연봉 1억 원에 개인 돈 1억 원을 보태 모교 연세대에 2억 원을 기부하는 백의종군의 자세로 화려했던 농구인생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수원=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KT 서장훈은 어느 때보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13일 개막하는 프로농구 2012∼2013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서장훈이 4일 수원 KT 올레 빅토리움 체육관에서 25년간 함께해온 농구공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는 올 시즌 연봉 1억 원에 개인 돈 1억 원을 보태 모교 연세대에 2억 원을 기부하는 백의종군의 자세로 화려했던 농구인생을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수원=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국보급 센터요? 차범근 선동열 정도는 돼야죠. 지난 25년 세월을 돌아보니 정말 한 게 없더라고요. 정상을 지키려고 버티다 농구 자체에 대한 즐거움까지 잃어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국보라 불리는 사나이 서장훈(38·KT). 그는 자신의 농구인생이 안쓰럽다고 했다. 한국 농구의 전성기인 농구대잔치 시절과 프로농구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했지만 영광만큼 아픔도 많았다고 했다. 올 시즌을 치른 뒤 은퇴하겠다며 5월 KT에 마지막 둥지를 튼 서장훈을 4일 경기 수원시 KT농구단 숙소에서 만났다.

○ 서장훈은 한물갔다?

서장훈은 정규시즌 통산 득점 1만2808점, 리바운드 5089개 등 독보적인 기록을 갖고 있는 한국 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통산 득점 2위는 지난 시즌 KCC에서 은퇴한 추승균의 1만19점이다. 그러나 2011∼2012시즌은 그의 농구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전 소속팀 LG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출전시간이 급격히 줄었다. 평균득점 7.5점, 리바운드 2.9개는 그의 역대 최악의 성적표였다. 농구계에서는 “이제 서장훈을 원하는 팀은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서장훈은 세간의 평가가 억울하다고 했다. “지난해의 부진에는 핑계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난 1년 때문에 25년의 농구인생 전체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흐지부지 은퇴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나 자신에게 납득이 가는 경기력을 보여준 뒤 그만두고 싶다.”

○ 서장훈과 전창진은 물과 불의 관계?

위기의 순간 서장훈의 손을 잡은 건 오래된 멘토 KT 전창진 감독이었다. 전 감독은 “문경은 우지원 등과 함께 한국 농구의 르네상스를 이끌던 선수를 이렇게 끝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서장훈을 영입했다. 서장훈에게는 SK 삼성 KCC 전자랜드 LG에 이어 여섯 번째 유니폼이었다.

돌아온 서장훈을 바라보는 농구 팬의 시선은 차가웠다.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장악하는 전 감독의 지도 스타일과 서장훈이 맞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서장훈은 “선수가 감독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어떤 감독에게도 기본을 어긴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더구나 감독님과 나는 오랜 세월의 신뢰로 다져진 사이”라고 해명했다. KT의 전지훈련 과정을 지켜본 농구 관계자들은 “서장훈이 전 감독의 지시를 100% 수행하는 등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서장훈은 자신의 거친 이미지에 대해서도 부풀려진 측면이 많다고 했다. “코트에서 거친 모습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의 근성과 승부욕이 없다면 프로도 아니다. 코트 밖에서도 나만의 욕심을 챙기고 살지는 않았다.”

○ ‘기부’는 은퇴 세리머니

서장훈은 KT와 계약한 뒤 연봉 1억 원과 개인 돈 1억 원을 보태 총 2억 원을 모교인 연세대에 기부하며 백의종군의 계기로 삼았다. 그는 이번 기부가 오래전부터 계획한 자신의 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역 마지막 해에는 1원 한 푼 받지 않고 나 자신이 아닌 농구팬을 위해 뛰고 싶었다. 그것이 내 은퇴 세리머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장훈은 올 시즌 멋지고 당당하게 코트를 떠나겠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명예로운 은퇴란 무엇일까. “코트에 나가면 열여섯 살이나 어린 후배도 있다. 그들과 맞붙어도 ‘역시 서장훈’이라는 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

수원=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서장훈#KT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