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덤벼”…김병현에게 두려움 따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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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9일 11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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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쿠텐 시절의 김병현. 스포츠동아DB
라쿠텐 시절의 김병현. 스포츠동아DB
‘한국형 핵잠수함’ 김병현(33·넥센)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게 됐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인 지난 1999년 역대 한국인 최고 계약금인 225만 달러를 받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병현은 13년간 해외야구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혈혈단신 미국 무대에 진출한 김병현을 표현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는 ‘투쟁심’이다. 김병현은 운동선수로는 왜소한 신체조건(176cm-75kg)이다. 체격이 작아 거구의 메이저리그 타자들에게 위축되기 쉽다. 하지만 김병현은 투쟁심으로 가득했다. 그 어떤 타자에게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정면승부를 펼쳤던 선수가 김병현이다.

‘투쟁심의 대명사’ 김병현의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김병현은 마이너리그에서 40이닝도 던지지 않은 채 메이저리그로 승격돼 1999년 5월30일(이하 한국시간) 뉴욕 메츠를 상대로 데뷔전을 가졌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8-7로 리드한 9회말 상황. 20살 김병현은 1점차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고, 당시 리그를 대표하던 강타자 마이크 피아자를 상대했다. 어린 햇병아리 투수에게는 부담스러운 등판이었다. 하지만 김병현은 위기를 즐겼다. 정면승부를 펼쳤고 피아자를 삼진으로 낚아내며 시즌 첫 등판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는 영광을 누렸다. 별 일 아니라는 듯 세이브 후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일 정도로 당당했다.

위기도 있었다. 김병현은 2001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연속 홈런포를 얻어맞으며 좌절을 맛봐야했다. 팀은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지만 김병현은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그렇지만 김병현은 절망하지 않았다. 2002년 6월 13일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경기에서 2이닝 동안 1피안타 4탈삼진을 기록하며 세이브를 올렸다. 이후 김병현은 팀 동료인 마크 그레이스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 잡은 공을 건네자 기다렸다는 듯 양키스타디움 외야로 던져버리며 월드시리즈의 악몽을 씻어냈다. 김병현의 강한 투쟁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팀을 옮긴 후에도 김병현의 투쟁심은 사라질 줄 몰랐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선발 투수로 활약하던 2006년 5월29일. 상대 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는 베이브 루스의 714홈런과 동률을 이루고 있었다. 김병현이 본즈에게 홈런을 허용한다면 선수 생활 내내 ‘본즈에게 715호 홈런을 허용한 투수’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은 자명했다.

하지만 김병현은 정면승부를 선택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강한 공을 뿌렸다. 비록 4회 본즈에게 통산 715호째 홈런을 허용했지만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은 김병현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김병현은 애리조나 시절에도 본즈와의 승부 때 감독의 고의사구 지시에 싫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작은 거인’ 김병현에겐 본즈나 피아자 같은 슈퍼스타들이 두려움이 대상이 아닌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하는 투쟁심의 대상이었다.

불같은 투쟁심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의 거구들과 싸워온 김병현. 다가올 2012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그의 투쟁심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아닷컴 조성운 기자 maddux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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