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PK 실축 후, 난 새로운 이동국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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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6일 07시 00분


3일 오후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전북현대와 상무상주의 프로축구 경기에서 전북 에닝요가 팀에 네번째 골을 터트린 후 이동국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전주ㅣ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3일 오후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전북현대와 상무상주의 프로축구 경기에서 전북 에닝요가 팀에 네번째 골을 터트린 후 이동국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전주ㅣ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전북, K리그 챔프 주역 이동국, 그의 우승 뒷이야기

한 골만 더 넣으면 역대 개인 최다골 타이
기록 놓치자 정신 번쩍…오히려 맘 더 편하고 몸 가벼워져

AFC MVP·득점왕에도 팀 준우승 쓴맛
“또 한 번 엎어지기 싫었다”…이 막물고 일궈낸 값진 우승컵
전북은 내 인생의 전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달뜬 목소리. 주인공은 기쁨에 흠뻑 취한 이동국(32·전북)이었다. 이동국이 진두지휘한 전북은 4일 K리그 정상에 올랐다. 그날 밤,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과 이흥실 수석코치, ‘절친’ 김상식, 브라질 공격 듀오 에닝요와 루이스 등 일행 5명과 함께 전주 시내의 한 클럽을 찾아 전북 서포터스 50명과 즐거운 팬 미팅을 가졌다. 이곳에서 이동국은 모처럼 맥주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며 우승의 여운을 즐겼다. 어렵사리 전화 연결이 된 그는 막 클럽을 나오던 길이라고 했다. 수 없이 많은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또박또박 전달된 메시지는 뚜렷했다. 절대로 또 한 번의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는 것과 전북은 그의 인생 전부라고 했다.

○절대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우승 소감을 해달라고 했다. 통상적인 답이 나올 줄 알았지만 의외였다. 잠깐의 침묵 끝에 나온 답은 이랬다. “또 한 번 엎어지기 싫었다.”

사실 여기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팀으로나 개인으로나 ‘엎어진다’는 건 이동국이 절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이다.

먼저 전북의 입장. K리그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기 한 달여 전, 전북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알 사드(카타르)에 무릎을 꿇었다. 골대 불운, 종료 직전의 극적인 동점 골, 승부차기 불운 등이 점철된 아픔의 드라마였다. 시즌 내내 강세를 떨쳤기 때문에 아쉬움은 훨씬 컸다. 후유증도 대단했다. 낙천적인 성격의 에닝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을 정도였다.

이는 이동국에게도 쓰라린 기억이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행복만큼 아픔도 많았다. 준우승이 확정된 이후 대회 최우수선수(MVP), 득점왕까지 석권했지만 시상대에 선 그의 표정은 그늘이 가득했다. 당시 공식 인터뷰에서 밝힌 소감에도 서글픔이 묻어나왔다.

“왜 중요한 순간마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솔직히 결과만을 놓고 보면 본인에게 썩 좋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그래서 더 짜릿했다.

울산과 챔프 2차전 때 전반 중반 무렵 얻어낸 페널티킥 찬스를 놓치면서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오히려 정신이 번쩍 났다고 했다. “(PK 실축으로)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몸도 가벼워졌다.”

두 번째 PK 찬스를 얻어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에닝요에 양보했다. 동료들은 이동국이 첫 번째 PK를 놓치자 “형이 아니었으면 꿀밤 한 대 놓고 싶었다”는 농을 던졌다. 물론 그럴 기회는 없었다. 결국 전북이 1, 2차전 합계 4-2로 우승했기에.

○인내, 결단, 자신감

이동국은 홍명보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포지션도 다른데? 이유는 분명했다. 축구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그냥 존경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굳이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모든 부분에서 모범이 될 만한 선배다. 언젠가 홍 감독님처럼 멋진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최고의 선수보다는 최선의 선수를 꿈꾼다. 최고의 위치보다는 최대의 노력이 훨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인생 좌우명은 무엇일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을 이끌었던 사령관 몽고메리 장군이 남긴 말이다.

“좋은 사람(리더)은 남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긍정적인 태도를 지향해야 하고,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인내할 줄 아는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 결과를 확신할 수 없어도 자신감을 외부에 표출해야 모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이동국은 그렇게 했다. 묵묵한 노력과 강한 정신력으로 역경을 이겨냈다. 지금도 가끔씩 1998프랑스월드컵을 회상하곤 한다. 조별리그 2차전 네덜란드와의 대결. 한국은 0-5 대패를 당했지만 상대 골키퍼 판 데르 사르의 간담을 서늘케 한 통렬한 발리슛을 잊을 수 없다.

“언제 은퇴를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멋진 추억을 오랫동안 만들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 그런 면에서 내게 기회를 준 전북은 내 인생의 전부라고 하겠다.”

이동국 MVP 오를까?…오늘 K리그 대상 시상식

2011 현대오일뱅크 K리그 대상 시상식이 6일 오후 2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다. 이날 시상식에는 이동국(전북) 등이 각축을 벌이는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상을 비롯해 베스트 11이 발표된다.

이동국?

○생년월일 : 1979년 4월 29일 ○포지션 : 공격수 ○신체조건 : 185cm/80kg ○학력 : 포항제철중-포철공고-위덕대 ○프로경력 : 포항(1998∼2006) 베르더 브레멘(임대:2000∼2001) 광주상무(군복무: 2003∼2005) 미들즈브러(2006∼2008) 성남(2008) 전북(2009∼) ○A매치 86경기 25골 ○수상경력 : K리그 신인왕(1998) 아시안컵 득점왕(2000) K리그 득점왕(2009) K리그 MVP(2009) K리그 도움왕(2011)

전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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