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54) 감독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에서 김남일(빗셀고베)이 경고누적으로 뛰지 못하게 되자 박지성에게 주장을 맡겼다.
대표팀의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코칭스태프들은 이영표(32)를 주장 후보에 올렸다. 이운재(36.수원)가 아시안 컵 음주파문으로 1년간 대표팀을 떠나 있는 상황에서 가장 성실하고 나이 때도 맞는 이영표가 임시 주장으로 가장 적합한 선수라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허 감독은 초지일관 박지성이었다. 박지성도 허 감독의 뜻을 군말 없이 받아 들였다. 그리고 박지성은 대표팀을 확 뜯어 고쳤다. 거스 히딩크 감독과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경험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선후배간의 벽을 허물었다. 홍명보-이운재-김남일로 이어지던 ‘카리스마형’ 주장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선배들에게는 친동생처럼 후배들에게는 친형 같이 다가갔다. 다소 권위주위적이던 과거 대표팀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변화시키면서 대표팀 내 잠재되어 있던 최상의 경기력을 이끌어냈다.
박지성은 평소 조용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코칭스태프들에게 할 말은 했다. 훈련 스케줄은 하루 전날에 알려달라고 했다. 또 선수들이 의기소침해 있으면 허 감독에게 훈련 시간을 조절해 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선수와 선수 사이의 소통 뿐만 아니라 감독-코칭스태프와 선수간의 소통에도 가교역할을 하며 팀을 하나로 결속시켰다.
그는 매 훈련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맨유에서 성공신화를 이룬 근간이 됐던 성실함은 대표팀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의 리더십은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이어졌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서는 세 골로 팀 내 가장 많은 골을 터뜨리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세 대회 연속 득점 행진도 이어갔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예선 최종전에서 데뷔골을 넣은 뒤 독일월드컵 프랑스전 동점골에 이어 남아공월드컵에서도 그리스와의 1차전에서 추가골로 제 몫을 다했다.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출전 등으로 쌓은 풍부한 경험을 들려주며 힘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박지성의 부드러운 리더십 뒤에는 남모를 고통도 숨어 있었다. 그는 지난 23일 나이지리아와 무승부를 거두고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룬 뒤 그간 주장으로서 받은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이번 대회 주장을 맡으며 앞선 주장 선배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절감하고 있다. 단순히 왼쪽어깨에 차는 완장이 아니라는걸 깨달았다.”
박지성은 겸손했지만 허 감독은 그가 주장으로서 대표팀을 이끈 역할에 대해 200% 만족했다. 우루과이와이 16강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허 감독은 “주장 박지성에게 120% 만족하고 있다. 우리나라 축구팀을 위한 최고의 주장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다.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 고민하는 후배들과 선배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고민도 많고 머리 아픈 일도 많겠지만 잘 해내는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다”며 무한 신뢰를 보냈다.
비록 허정무호의 무한 질주는 16강에서 멈춰 섰지만 허 감독의 가슴 속 영원한 주장은 사상 첫 원정 16강을 함께 일군 박지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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