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남장현기자의 오스트리아리포트] 아름다운 도전 마친 곽태휘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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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31일 15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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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한국시간) 쿠프슈타인 아레나에서 열린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은 “어떤 결과를 내도 좋으니 우리 애(선수)들이 부상은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하지만 리더의 바람이 깨지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반 29분께 수비수 곽태휘(29·교토 상가)가 상대 공격수와 공중 볼을 다투는 과정에서 왼쪽 무릎을 다쳤다. ‘딱’하는 소리가 본부석에 앉아 있던 기자들의 귀에 들릴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필드를 뒹굴며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다 전반 32분 이정수와 교체된 채 들것에 실려 나오던 곽태휘의 표정은 고통보다는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왔다.

곧바로 쿠프슈타인 시내 병원으로 옮겨져 MRI 촬영을 한 결과는 왼 무릎 내측 인대 부분 파열. 담당 의사가 휴일이라 출근하지 않았다가 오후 7시 나와 진단을 했고, 오후 8시10분 전치 4주라는 최종 결과가 나왔다.

월드컵 출전의 부푼 꿈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고민하던 허 감독은 곽태휘에 귀국 지시를 내렸다.

대표팀 내 거의 유일하게 전력 구성을 완료했다고 봤던 포지션이 바로 디펜스였기에 씁쓸함은 더욱 컸다. “아픔은 빨리 잊도록 하자”란 말을 전해야만 했던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마음은 어땠을까.

병원에서 밤늦게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으며 곽태휘는 대표팀 스태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토록 필드에 오래 누워있었던 건 확실히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뭔가 여운이 남아서, 그냥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쉬워서….”

유독 ‘도전’이란 말이 어울렸던 곽태휘였다. 왼쪽 시력을 거의 잃어버렸음에도, 국내 최고 수비수 반열에 올라섰다. 2008년 1월30일 허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칠레전을 통해 늦깎이로 함께 A매치 무대에 등장했다.

허 감독과 전남에서 사제지간이었다는 이유로 오해도 받았지만 순수한 실력으로 극복했다. A매치 12경기 4득점. 44경기에 4골을 넣은 차두리와 같은 기록이니 ‘골 넣는 수비수’란 표현이 괜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일부 팬들에게는 ‘유리 몸’이란 평가를 받았고, 동료들에겐 ‘아이싱 맨’이란 닉네임을 얻었다. 노이슈티프트에서도 훈련을 마친 뒤 무릎과 발목에 얼음 팩을 둘둘 감고 항상 맨발로 버스에 올라섰다. 오른 무릎, 왼 발목에 이어 왼 무릎까지…. “요즘 어떠냐”고 물으면 씩 웃으며 “다치지 않으려고 그렇다”는 대답을 했었다.

“(아내가) 다치지 말고 돌아오래요.”

예비 엔트리 30명의 일원으로 파주NFC에 소집됐을 때 곽태휘의 입소소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 아무리 아파해도, 가슴앓이를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남은 건 모든 걸 훌훌 털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일이다.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너무 젊다. 포기해서도 안 된다. 아니, 그럴 권리도 없다. 누구보다 험난했던 도전이 아까워서라도 오뚝이처럼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당당히 외칠 수 있다. 항상 최고보다는 최선을 목표했노라고.

노이슈티프트(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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