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FT 동반 산행]함백산에 올라 야생화와 인사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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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4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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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이 감춰둔 ‘흰 얼레지’ 발현했다!!


2010년 5월 15일(토) 함백산-은대봉-금대봉 일원에서 2010년 컬럼비아 1기 필드테스터 동반산행이 야생화 탐사를 주제로 개최되었다. 오전 7시, 반가운 표정으로 만난 29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3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백두대간 마루금 만항재. 야생화 탐사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우리는 버스를 돌려 태백선수촌 표시판이 있는 공터까지 이동하였다. 1,330m까지 대형 버스로 올라가니 편리하기는 했지만 왠지 ‘이렇게 높은 곳까지 버스가 올라오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코끝을 스치는 상큼한 바람결엔 야생화 향기가 배어 있는 듯하다. 산이나 들에 피는 야생화를 만나러가는 일은 항상 즐겁다. 야생초들의 꽃 잔치에 초대받는 일은 오랜 친구를 보러가는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특히 오늘 같이 이른 봄, 높은 산에 갈 땐 더욱 그렇다. 함백산 정상부엔 이른 봄꽃들이 이제 피기 시작했다. 한 달 전, 북한산 진달래는 만개했었는데 함백산 진달래는 아직도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하얀 개별꽃, 분홍색 얼레지가 무리지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족도리풀, 산괴불주머니, 괭이눈, 홀아비바람꽃, 꿩의 바람꽃, 큰괭이밥, 애기중의 무릇, 진달래, 솜나물, 피나물, 노랑제비꽃, 태백제비꽃, 왜현호색, 갈퀴현호색, 댓잎현호색, 흰댓잎현호색, 양지꽃, 나도양지꽃, 민눈양지꽃... 함백산의 5월은 지천으로 꽃밭이다. 특히 올해는 추위가 늦게까지 이어져 4월과 5월에 피는 꽃들이 한꺼번에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렸다. 야생화를 통해 대지에서 뿜어 나오는 무한한 생명력은 카메라가 감당키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른 봄에 피어난 야생화들이 신방 커튼을 활짝 열어 제치고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잔치가 끝난 후, 대를 이어갈 종자들을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실어 보낼 것이다. 계곡물에도 띄워 보낸다. 짐승이나 새의 몸을 이용해 앞산에도 보내고, 뒷산에도 보낸다. 이와 같은 식물의 생존방식에는 억지가 없다. 수 십 만년 동안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온 식물들은 억지 부리지 않고 지구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깨달은 위대한 생존자들이다. 뷰파인더를 통해 확대된 아름다운 5월의 꽃 잔치를 들여다보노라면 시간을 초월한 무한공간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우리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들의 생존은 지혜롭게 이어지고 있다.

3-4년 전 함백산에 갔을 때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으로 오르는 산길에는 조릿대 꽃이 온 산을 덮고 있었다. 조릿대 꽃을 더러 보기는 했지만 그처럼 온 산의 조릿대가 모두 꽃을 피운 것은 매우 진기한 일이었다. 조릿대는 5년이 지나야 꽃을 피우고 모죽(母竹)에 연결된 대나무는 모두 죽는다. 그때 생각하길 “다음에 와서 꼭 확인해봐야지.” 했는데, 이번에 보니 정말로 모든 조릿대가 죽어 있었다. 떨어진 씨앗은 다음해에 싹이 튼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3-4년 전이었는데도 아직까지 싹이 터서 올라온 것이 없었다. 바위지대라서 씨앗의 활착률이 낮은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공부를 해볼 참이다. 내년에도 꼭 다시 가보고 싶다.

우리를 반기는 야생화 중, 봄의 여왕이라 할 수 있는 얼레지가 가장 많았다. 만항재에서 은대봉을 지나 금대봉까지 약 6km에 이르는 전 구간에 얼레지는 고루 분포하고 있었다. 홀아비바람꽃 군락지도 지속적으로 관찰되었다. 함백산 정상에서 중함백산으로 내려가는 길섶에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흰얼레지꽃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20년 야생화 촬영하는 동안 두 번째로 만나는 흰 꽃이다. 꽃의 개화 상태도 아주 좋았다. 원주에서 참가한 최면기 씨가 발견하여 모두 탄성을 지르며 셔터를 연속 눌러댔다.

선두 산행대장으로 수고해준 최환묵 씨는 함백산에 자생하는 야생화를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꽃의 특징을 모두 기록해와 현장에서 확인해보는 학구파였다. 누구든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최환묵 씨와 같은 자세로 공부한다면 2-3년이면 야생화에 관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반드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다만 야생화를 사랑하고 그들의 특성과 성장환경을 이해하는 약간의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사실 함백산은 야생화도 좋지만 산 자체로서도 의미 있는 산이다. 함백산은 태백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함백산과 태백산은 옛날에는 하나의 산군(山群)으로 그 산군(山群)의 주산(主山)은 현재의 함백산이다. 두 산은 같은 산줄기에 비슷한 덩치이고, 높이에 있어서는 함백산이 1572.9m 이고 태백산 (남봉/1560.6m과 북봉(장군봉)/1566.7m이 있는데 북봉이 주봉이다.)은 1566.7m로 함백산보다 6.2m 낮다.

지금의 함백산이 본디 태백산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력한 것이 정암사(淨巖寺)사적기의 기록이다. 그 기록에 의하면 <태백산 서쪽에 정암사가 있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정암사에서 볼 때에는 <정암사 동쪽에 있는 산이 태백산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정암사 동쪽에 있는 산은 현재의 함백산이므로, 함백산이 진짜 태백산 이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현재의 태백산은 정암사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정암사사적기에서 말하는 진짜 태백산이 아닌 것이다.

1861년경에 제작된 김정호의 ‘대동여지전도’에는 현 함백산을 대박산(大朴山)으로, 현 태백산을 태백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보다 150년 앞선 1710년에 제작된 윤두서의 ‘동국여지지도’에는 현 함백산을 태백산으로, 현 태백산은 문수산으로 설명하고 있다.
위의 논쟁은 학자들이 문헌적으로 깊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태백산과 함백산 일대의 산군(山群)을 본디 포괄적으로 <한山> 이라 했는데 이를 한자어로 표현하면 ‘함백산’ 또는 ‘태백산’이 된다. 이 일대에서 가장 높고 자락이 넓은 산 즉, 산군(山群)의 주산(主山)은 현재의 함백산 이라는 것이다. 또한 <한山>에서 연유된 이 산(현 함백산)은 동국여지승람에는 정암산(淨巖山), 삼국유사에는 묘범산(妙梵山), 정암사사적기에는 대여산(黛與山) 그리고 태백산의 한자도 태백산(太白山)이 아닌 태백산(太伯山) 이었다고 한다.(伯은 ‘맏이’의 뜻임)

위와 같은 주장은 산을 좋아하고, 동국대 국문학 교수였던 고(故) 김장호 씨가 생전에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그의 저서 <한국명산기>에 현재의 함백산이 태백산으로 표시된 또 다른 고(古) 지도도 있다고 기술했다.

글 이규태(마운틴월드 등산학교 원장)
사진 이훈태(한국산악사진가회 회장)


▲ 컬럼비아 FT 동반 함백산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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