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안나푸르나 최종 포기,내년 봄 재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19일 12시 02분


"무사히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 다시 오겠습니다."
19일 오후 1시(현지 시간)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철의 여인' 오은선 대장(43·블랙야크)은 라마제단 앞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늘 강한 모습이던 그는 목이 멘 채 "후회하진 않지만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앞서 오 대장은 오전 7시 반 전진 베이스캠프(5100m)에서 정상을 바라봤다. 정상 부근은 여전히 눈이 세차게 날리고 있었다. 밤새 바람이 잦아들길 기도했지만 안나푸르나는 그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열흘 만에 다시 많은 눈이 내렸다. 오 대장은 "철수하자"고 짧게 말했다.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이 무산됐다. 1993년 첫 발을 내디딘 이후 16년 동안 오은선을 유혹했던 히말라야. 어떨 때는 밉다가도 한없이 그리웠던 '평생 연인' 히말라야는 또 한 번 오 대장의 의지와 끈기를 시험했다. '철의 여인'은 위대한 자연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오겠노라고 다짐했다.
17일 베이스캠프(4190m)를 출발한 오 대장은 4시간 만에 전진 베이스캠프(5100m)에 도착했지만 강풍에 막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현지 기상예보에 따르면 27일까지 정상 부근 바람은 평균 초속 25m 이상이고 최고 초속 32~43m. 오 대장은 17, 18일 이틀을 전진 베이스캠프에 머물며 변덕 심한 히말라야 바람이 약해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안나푸르나는 요지부동이었다.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 중 완등자가 가장 적은(2008년 6월 기준 153명) 봉우리다웠다.
가을에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것은 천운에 달렸다고 한다. 이번 오은선 원정대를 포함해 1990년 이후 가을에 안나푸르나 북벽을 통해 정상에 도전한 팀은 불과 17팀, 등정에 성공한 팀은 2팀뿐이다. 오은선 원정대를 비롯해 올 가을 안나푸르나 북벽을 찾은 한국 원정대 4팀은 모두 등정에 실패했다. 이로써 오 대장은 2008년 5월 마칼루(8463m)부터 이어온 8연속 히말라야 등정 기록을 멈췄다.
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함으로써 대기록 달성을 내년으로 미루게 됐다. 비록 이번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오 대장이 '여성 세계 최초 14좌 완등'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경쟁자인 에두르네 파사반(36·스페인)은 이번 달 13번째 봉우리인 시샤팡마(8027m)에 도전했지만 역시 강한 바람 때문에 실패했다. 파사반은 14좌 완등에 시샤팡마와 안나푸르나 2개를 남기고 있다. 다른 경쟁자인 게를린데 칼덴브루너(39·호주)도 에베레스트(8850m)와 K2(8611m)를 남겨뒀다. 오 대장과 두 경쟁자 모두 겨울 등반 계획은 없다.
오 대장은 지난달 4일 원정대 발대식에서 "걱정하지 마세요. 힘들면 내려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를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약속이었다. 그는 아쉽지만 약속을 지켰고, 다음을 기약했다.
안나푸르나=한우신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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