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윤성환 “난, 선발투수… 오직 승리 뿐이야”

  • 입력 2009년 9월 2일 0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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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승 공동2위… 삼성의 에이스로 우뚝선 윤성환의 야구스토리

“다승왕이요? 당연히 욕심 있죠. 제가 1승을 올리면 팀이 이기는 거잖아요.

4강이요? 저희는 당연히 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하하.”삼성 윤성환(28)은 같은 팀 오승환(27), 안지만(26)과 대구구장 인근 빌라에서 동거중이다. 세 남자의 동거생활이 흥미로운 건 집안 내 역할분담도 포지션별이라는 것. ‘선발’ 윤성환이 밥을 하면 ‘중간계투’ 안지만은 청소를 비롯해 잔심부름을 하고 ‘마무리’ 오승환은 설거지를 담당한다.

하지만 올해는 두 동생이 동시에 아프면서 맏형 윤성환이 모든 걸 떠안고 있다. 얄궂게도 팀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상과 컨디션 난조 등으로 주축투수들이 속속 빠져나간 삼성에 윤성환은 신(新) 에이스로 마운드를 책임지고 있다. 비록 8월 29일 SK전에서 8연승 행진은 멈췄지만 “올라가면 이긴다”는 그의 자신감에는 변함이 없다.

○윤성환·오승환·안지만 세 남자의 동거이야기

동의대를 졸업하고 2004년 2차 1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된 윤성환은 원래 경산 볼파크에서 숙소생활을 해왔다. 숙소에서 산다는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돈 안 들고 밥 잘 나오고 몸 관리가 용이한 생활”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후배들이 들어왔고 4년간의 숙소생활도 청산할 때가 왔다. 부산 출신 윤성환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서울 출신 오승환과 합심해 지난해 자취를 결정했다. 안지만은 대구 출신임에도 형들과의 동거 생활에 흔쾌히 합류했다. 그렇게 함께 살게 된 세 남자.

그러나 요즘 윤성환은 외롭다. “셋이서 함께 운동장으로 출근했다가 (오)승환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왔거든요”라며 씁쓸해 했다. 안지만은 17경기 만에 어깨 통증을 호소하며 지금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고, 오승환 역시 어깨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경기장을 오갈 때 생각이 많이 나죠. 늘 함께 다녔으니까요. 부담이요? 부담보다는 안타까워요. 아마 본인들이 가장 힘들 거예요. 야구를 하고 싶은데 못 하니까.”

○갑작스런 부진…스스로 선택한 2군행

윤성환의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처럼 오승환과 안지만의 전력이탈은 삼성 입장에서도 뼈아팠다. 게다가 팀 에이스 배영수가 지독한 슬럼프로 힘을 못 쓰는 상황. 남은 윤성환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 역시 시즌 초반 ‘나가면 두들겨 맞는’ 일이 허다했다.

개막전이었던 4월 4일 대구 LG전을 시작으로 4월 10일 광주 KIA전, 4월 18일 대구 두산전까지 파죽지세 3연승을 올렸을 때만 해도 윤성환의 난조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저도 놀랐어요. 주변에서 다들 ‘올 시즌 윤성환이 일내겠다’고 말했거든요. 야구는 역시 흐름인 것 같아요. SK(6월 10일 문학)전이었을 거예요. 1회(0.2이닝 2실점)에 강판된 적이 있는데 한 번 안 되니까 계속 맞게 되더라고요.”

결국 윤성환은 2군행을 자청했다. 투구밸런스도 엉망이었지만 무엇보다 마운드 위에서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조계현 투수코치는 “다시 한 번 해보고 정 안 되면 그때 가도 늦지 않다”고 만류했다. 시즌 중간 투구폼을 교정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윤성환은 조 코치의 지도하에 구슬땀을 흘렸다.

○야구를 못했던 아이… 동의대서 꽃 피다

6월 27일 잠실 두산전. 심기일전한 윤성환의 연승행진이 시작됐다. 10번(선발 9번·구원 1번) 등판해 무려 8승. 7월 30일 잠실 LG전에서는 9이닝 2실점으로 생애 첫 완투승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윤성환은 “나는 원래 야구를 못하는 아이였다”고 고백했다.

감천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곽동훈(현 삼성)이 입은 유니폼이 멋있어서 따라 시작한 야구.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오른 것도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하지만 구속이 130km대 초반이다 보니 프로구단 입단은 언감생심이었다. 가능성만 가진 윤성환을 깎고 다듬은 건 동의대 김민호 감독이었다.

“김 감독님이 새벽 6시 반부터 밤 10시까지 죽도록 훈련만 시키셨어요. 오죽하면 야구부를 ‘특공대’라고 불렀겠어요. 타자들은 매일 밤마다 스윙 1000번씩 했고 투수들은 이상번 코치님(현 감독 대행)에게 투구 폼부터 공 던지는 방법까지 하나하나 배웠어요. 지금 다시 하라면 못 할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때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병역비리 아픔 딛고 에이스로 우뚝

동의대 김민호 감독이 윤성환을 ‘투수’로 키웠다면 삼성 선동열 감독은 그를 ‘에이스’로 만들었다. 윤성환이 입단했을 당시 수석코치였던 선 감독은 캠프에서 선수들에게 “앞으로 이름값 빼고 잘 하는 애들을 쓸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생짜 신인’ 윤성환을 2004년 개막전 선발로 내보냈다. 덕분에 윤성환은 개막전에서 승리한 역대 3번째 신인투수가 됐다.

그 해 군 병역비리가 터져 공익근무를 하게 됐을 때도 선 감독은 윤성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보였다. 2007년 그가 제대하기 일주일 전 “제대하자마자 (엔트리에)등록시킬 테니 준비하라”고 전하기도 했다.

비록 오른쪽 가슴근육통으로 선발투수로는 세울 수 없었지만 중간계투로 활용하며 그를 갈고 닦았다. 2008년, 윤성환은 차우찬, 정현욱 등 쟁쟁한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4선발로 발탁됐고 10승을 올렸다. 그리고 선발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 올해,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2년 연속 10승, 시즌 첫 전 구단 승리투수, 다승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다승왕, 당연히 욕심 있죠. 제가 1승을 올리면 팀이 이기는 거잖아요. 특히 요즘은 부모님이 좋아해주셔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들 뒷바라지하느라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으니까요. 사실 군대 빼려고 할 때 부모님은 결사반대하셨거든요. 말 안 들은 아들 때문에 그때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으셨으니 앞으로는 제가 잘 해서 축하전화를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4강이요? 저희는 당연히 가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데요. 하하.”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일러스트|박은경 기자 parkek411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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