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산의 품에 편히 안기렴”

  • 입력 2009년 7월 13일 21시 34분


낭가파르바트 정상에서 하산 중 사망한 여성 산악인 고미영 씨(42)의 서울 송파구 석촌동 자택에는 산을 향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13일 방문한 고 씨의 집은 방 2개와 거실로 이뤄진 56㎡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마치 산 중턱에서 등산객에게 휴식을 제공하며 정상으로 갈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통나무 산장 같은 에너지가 넘쳐났다.

고 씨의 서재 벽면에는 각종 등산복과 등산 장비가 매달려 있어 당장 창문만 열면 산이 보일 것 같았다. 책장도 산과 등산에 관한 책들로 가득했다. 특히 고 씨가 네팔, 파키스탄 등 방문한 국가의 지폐로 만들었다는 목걸이는 그의 모험심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실 수납장에는 고 씨가 생전에 각종 등반 대회에서 받은 수십 개의 금메달들과 트로피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고인의 산에 대한 열정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그녀에게 집은 훈련 캠프였다. 거실에는 다리 근력을 강화하기 위한 산악용 러닝머신이 설치돼있었고 침실 문간 사이에는 철봉이 걸려있었다. 가족들에 따르면 고 씨는 한 손가락만으로 하루에 수십 번씩 턱걸이 운동을 했다. 고 씨가 2년 전 석촌동으로 이사 온 까닭도 인근 석촌호수를 아침, 저녁으로 뛰기 위해서였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고 씨는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14개 중 11개를 정복한 여성 산악인이란 영광을 얻었다.

하지만 고 씨를 잃은 가족들은 슬픔을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아버지 고재은 씨(83)는 "평소 딸이 TV에 나오면 TV를 꺼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딸이 유명 산악인으로 신문, 방송에 나오는 것을 자주 챙겨보고 남들에게 자랑했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딸이 산에 오르는 과정이 공개된 뒤부터 딸이 TV에 나오는 것을 다시는 보지 않게 됐다.

고 씨는 "저렇게까지 고생하며 산에 오르는지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자랑만 했으니…. 너무 마음이 아파 다시는 딸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런 그도 딸의 비보를 접한 후 인터넷을 통해 딸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딸이 등반하는 날이면 새벽마다 집 근처 교회를 찾아 기도하던 어머니 최부산 씨(68)는 누구보다 서럽게 울었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신이 허락한 품에 안기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딸에게 이들은 "이젠 정말 신의 품속에 안겼다"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미영아. 그토록 좋아하던 산에서 하늘나라로 갔으니…. 하늘나라에 가서도 네가 제일 좋아하던 그 곳(산)에 가거라."

김윤종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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