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 브레이크] “200만원 줄테니 공짜관중 들여다오”

  • 입력 2009년 5월 14일 08시 33분


FA컵대회서 벌어진 축구협회 ‘촌극’

당신이 프로축구단을 운영한다고 치자. 만일, ‘관중을 무료로 입장시킨다면 20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온다면? 솔깃하겠는가?

공짜로 벌어지는 프로스포츠.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고는 찾아볼 수 없는 ‘촌극’이 한국축구 최고의 클럽을 가리는 ‘2009하나은행 FA컵’ 32강전에서 벌어졌다.

대한축구협회는 13일 FA컵 32강전에 앞서 K리그 15개 구단에 “관중을 무료로 입장시키면 대회운영비 명목으로 200만원을 지원하겠다. 단, 유료관중일 경우 지원금은 없다”고 통보했다.

작년 32강전을 하위리그(N리그) 홈구장에서 개최토록 했다가 관중 동원에 실패한 협회는 올해는 상위리그(K리그) 홈구장에서 경기를 열도록 결정하면서 “더 많은 관중이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방법을 짜내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상무는 아예 홈 개최권을 포기했고, 나머지 K리그 14개 팀 가운데 수원 삼성, FC서울, 강원FC를 제외한 11개 구단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32강 16경기 중 13경기가 무료다.

이를 두고 ‘K리그도 아니고 FA컵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그냥 흘려 넘기기엔 몇 가지 납득하기 힘든 점이 눈에 띈다.

K리그 구단들이 판매하는 연간 회원권에는 통상 K리그 뿐 아니라 FA컵도 볼 수 있도록 돼 있다. 홈팀을 응원하기 위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연간회원들은 이번 일로 자칫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구단이나 협회가 프로스포츠로서 기본적인 속성 자체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유료관중을 고수한 한 구단 관계자는 “솔직히 우리도 관중입장 수익을 올릴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FA컵은 K리그와 달리 예상관중도 집계가 안 될 정도다”며 “수익적인 측면보다는 프로경기를 무료로 개방한다는 발상 자체가 옳은 명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장권 가격을 받으면 출입구에 인원도 배치해야 하는 등 무료일 때보다 당연히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따지고 보면 유료입장일 때 지원을 해주는 게 상식에 맞지 않느냐. 협회가 오히려 무료를 권장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한심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무료를 택한 구단 관계자는 “프로끼리 대결이었다면 입장권 가격을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상대가 실업팀이지 않느냐”며 “연간회원들이 피해를 본 게 아니라 일반 팬들이 이득을 얻은 셈이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프로끼리 맞대결이 불가피한 8강에서는? 더 나아가 4강과 결승은? 협회는 8강 이후에도 홈 구단이 원하면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그 때는 어떤 변명을 할지 궁금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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