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축구 꿈나무들 “남한서 꿈 심어요”

  • 입력 2007년 6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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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해 훈련 중인 북한 4·25 유소년 축구선수단(청색 유니폼)이 11일 전남 강진군 종합운동장에서 강진중학교 선수들과 친선경기를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강진=박영철 기자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한을 방문해 훈련 중인 북한 4·25 유소년 축구선수단(청색 유니폼)이 11일 전남 강진군 종합운동장에서 강진중학교 선수들과 친선경기를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강진=박영철 기자
11일 오후 전남 강진군 강진읍 강진종합운동장 천연잔디구장.

남쪽나라에 온 지 10일째인 북한 유소년 축구대표 선수 26명이 밝은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13∼15세로 꾸려진 대표팀은 대부분 키가 170cm를 넘었지만 얼굴은 앳돼 보였다.

이날은 강진중학교 축구팀과 두 번째 친선경기를 갖는 날. 골대 앞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던 선수들이 힘차게 뛰어나갔다.

경기가 시작됐지만 벤치에 있는 후보 선수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었다. 플라스틱 물병으로 동료 선수의 머리를 가볍게 치거나 물병을 위로 던졌다 받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북한 선수들은 중국 쿤밍(昆明)에서 전지훈련을 하다 동아시아유소년친선축구대회(1∼14일)를 개최한 강진군의 초청으로 남쪽 땅을 처음 밟았다.

축구팀 단장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고 북한의 8강 신화를 이룬 당시 골키퍼 이찬명(62) 씨.

선수와 8명의 임원은 강진읍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도암면 다산수련원에서 묵고 있다.

이들은 하루 세 끼를 수련원 1층 식당에서 호텔 뷔페식으로 해결한다.

식사 때마다 22∼25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해물요리를 특히 좋아해 생선회, 초밥, 훈제연어는 항상 그릇을 비운다. 닭고기, 소갈비, 불고기 등을 매번 내놓지만 거의 손대지 않는다. 주스를 즐겨 마시고 10여 명은 식사 후 1회용 커피를 타 먹기도 한다고 남북체육교류협회 관계자가 전했다.

10일 점심때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날씨가 더워 냉면을 내놨는데 한 선수가 “야, 물국수다”라고 외치자 우르르 몰려와 먹는 바람에 60인분이 5분 만에 동났다. 뷔페를 제공하는 호텔 측은 냉면을 구경조차 못한 임원과 협회 관계자들을 위해 강진읍에서 냉면을 직접 사다가 저녁 식탁에 내놓았다.

김태길 광양필레모호텔 식음료팀장은 “선수들이 항상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면 빗자루로 직접 쓸어 담는 등 예의가 무척 바르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운동장에 갔다 돌아오면 모습을 일절 드러내지 않고 수련원 3층 방에서 지낸다.

수련원 관계자들은 이들이 방에서 장기를 두거나 카드놀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한데 모여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소년장사’, ‘홍길동전’ 등 북한에서 가져온 DVD를 보기도 한다.

수련원에서 일하는 오점애(53·여) 씨는 “밤에 세탁물을 가지고 올라가 보면 노랫소리가 자주 들리는데 다른 곡은 잘 모르겠고 아리랑은 곧잘 부른다”며 “방에서 꿍꽝거리고 떠들고 노는 것을 보면 우리의 10대들과 똑같다”고 말했다.

선수단은 외부와의 접촉을 극히 꺼린다. 3일 강진읍내 한정식집에서 열기로 한 환영만찬을 갑자기 취소하는 바람에 군청 관계자들이 장만한 음식을 수련원으로 가져가 행사를 치르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들은 14일까지 머물다 쿤밍 전지훈련장으로 떠날 예정이다.

강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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