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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월 8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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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 영하 22.2℃ /도착 후 영하 24℃
풍속 : 초속 3m
운행시간 : 08:55-21:10 (12시간15분)
운행거리 : 32.9km (누계 :892.6km)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 237.6km
야영위치 : 남위 87° 52.338′ / 서경 82° 02.681′
고도 : 2,530m / 88도까지 남은 거리: 14.4km
▼자유를 꿈꾸며!▼
기온이 뚝 떨어진 느낌이다. 온도계는 영하 22.2℃를 나타내고 있지만 탐험 이래 가장 춥게 느껴진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내려감과 동시에 체감온도도 낮아지는 것이다. 탐험대의 운행은 날씨, 기온, 바람에 민감하다. 같은 힘을 들이고도 일기의 변화에 따라 운행거리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문제는 어떤 상황이더라도 탐험대의 운행을 멈추거나 지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날씨가 나쁘면 그만큼 대원들만 고생이다. 어찌됐든 정해진 시간 동안은 걸어야 하니까. 다행히 바람이 약하고 맑은 하늘에 태양이 반짝이고 있어 출발준비를 하면서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08:55분 출발. 선두는 오늘도 박대장.
사스트루기 지역의 연장선상에서 운행은 다소 빠르게 진행된다. 밤사이 쉰 덕에 오전에는 기운이 그래도 좀 난다. 울퉁불퉁한 지역을 피해 되도록이면 대원들이 편하게 따라오도록 박대장이 앞서 나가며 루트를 찾고 있다. 다행히도 3시간의 운행 후에는 사스트루기 지대의 험악한 곳은 거의 지난 모양이다. 기복이 많이 줄어들어 루트를 잡아 나가는데 훨씬 수월해 졌다. 운행속도가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피할 수 없는 것은 과감하게 돌파하고 여전히 험악한 큰 돌기들은 피해가며 모처럼 매끄러운 운행을 이어간다. 오늘따라 몸이 좋지 않은 강철원 대원도 이를 악물고 대열의 맨 끝에서 뒤처지지 않고 따라온다. 몸은 망가졌어도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강 대원의 투지가 놀랍다.
해가 하늘위에 떠 있고 바람도 없는 날씨인데 추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썰매를 끌며 쉬지 않고 두 시간을 내리 걸어도 손과 발의 찬 기운은 가시지 않는다. 마스크에 입김이 얼어 달라붙은 대원들의 모습이 누구랄 것 없이 비슷하다. 이치상 대원은 마스크의 얼음과 콧수염이 언 것을 떼어 내려다 수염이 뭉턱 빠져나간다. 이현조 대원의 마스크에는 10cm가 넘는 고드름이 매달렸다. 자연적인 모든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진다. 탐험 대원들의 상태 또한 더 좋아질리 만무다. 무엇이 문제인가.
지친 몸으로 12시간을 걷다보면 아무런 생각이 없다. 앞사람이 끌고 간 썰매자국 만을 내려다보며 무념무상(無念無想)에 빠진다. 발걸음은 의도한 대로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내 딛는다. 힘이 남아 체력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탐험대원들에게 남은 것은 '악과 깡'이 전부인 정신력이다. 정신력으로 버틴다. 남은 극점까지의 거리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내일이면 남위 88도를 넘는다. 그 약발로 89도를 향하고 남극점은 만병통치약이 되리라. 그것은 탐험대원들이 남극점 탐험을 준비하면서부터 꿈꿔왔던 '자유' 그것이 아니겠는가.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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