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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6일 2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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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 이제 성숙했는가〓잉글랜드의 상징은 사자.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문장에도 3마리의 사자가 그려져 있다. 98년 프랑스월드컵 16강전이 끝난 뒤 잉글랜드 언론은 “10마리의 사자와 1명의 멍청이가 아르헨티나를 상대했다”고 떠들었다. 아르헨티나 미드필더 디에고 시메오네의 거친 플레이에 격분한 데이비드 베컴이 상대를 발로 차 퇴장당한 것. 후반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점수는 2-2였다. 베컴의 퇴장으로 10명이 싸운 잉글랜드는 전반전의 공세와는 달리 상대 공격을 막는데 급급해야 했다. 잉글랜드는 결국 승부차기에서 4-3으로 패했다. 시메오네와 베컴이 다시 만난다. 베컴이 이번에도 시메오네의 노련미에 말려들까.
▽베론, 스승을 상대로〓아르헨티나의 ‘사령탑’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잉글랜드의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의 인연은 각별하다. 아르헨티나의 보카 후니어스에서 뛰던 베론을 이탈리아 세리에 A로 끌어들인 ‘은사’가 바로 에릭손 감독. 에릭손 감독은 당시 삼포도리아 감독이었다. 에릭손 감독은 라치오로 옮기면서 베론을 데려갔다. 라치오의 1999∼2000시즌 이탈리아 우승을 이끈 두 주역이 베론과 에릭손 감독이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오언에게 찾아온 희소식〓스웨덴전에서 오언이 보여준 플레이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오언에게 희소식이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에는 악재다.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부상당한 로베르토 아얄라의 상태가 좋지 않다. 잉글랜드전에도 빠질 듯. 아얄라는 아르헨티나 부동의 센터 백이자 오언의 마크맨이다. 오언의 각오는 대단하다. 오언은 기자회견을 통해 “4년전의 설욕을 하고 싶다”고 분명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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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킥은 치명적〓베컴이 위협적인 이유는 그가 ‘킥의 달인’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의 오른발에는 뭔가가 있다. 베컴은 세계에서 가장 위력적인 프리킥과 크로스 패스를 날리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아르헨티나에도 베컴을 상대할 만한 선수는 있다. 아르헨티나의 프리킥은 위치에 따라 베론과 ‘바티 골’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나눠 찬다. 공을 감아 차는 베론의 프리킥은 베컴 못지 않은 위력이 있다. 바티스투타는 주로 강하게 내지르는 경향이 있다. 스타일은 달라도 두 선수의 프리킥은 상대 골문 구석으로 정확히 향한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문전 프리킥은 양팀 모두에 치명적이다.
▽조커 싸움도 볼만하다〓잉글랜드는 미드필더 키어런 다이어와 포워드 로비 파울러가 부상에서 벗어났다. ‘신세대 스타’ 조 콜도 출전 준비가 끝났다. 아르헨티나는 노장 스트라이커 클라우디오 카니자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됐다. 미드필더 파블로 아이마르도 투입될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
삿포로〓주성원기자 swon@donga.com
▼경기 열릴 삿포로 ‘폭풍전의 고요’
축제를 앞두면 마음이 들뜨는 법이다. 폭풍이 불기 전날 밤은 고요하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벌일 ‘일전’을 하루 앞둔 6일 삿포로 시내는 경쾌하면서도 평온한, 두 가지가 어우러진 분위기였다.
삿포로는 일약 국제도시로 변모했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응원단은 물론 일본 전역에서 또 세계 각국에서 2002한일월드컵 예선전 최대의 하이라이트를 보기 위해 속속 몰려들었다.
미디어의 관심도 대단하다. 삿포로 돔에서 치러졌던 이전 2경기의 두 배가 넘는 1000여명의 보도진이 아르헨티나-잉글랜드전을 보기 위해 삿포로를 찾았다. 삿포로돔 미디어센터에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은 기자들도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기사를 만들고 있는 그들의 국적을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삿포로 치토세공항과 삿포로역, 오도리공원 등에는 잉글랜드기를 몸에 감거나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서로를 발견하면 손을 흔들거나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게 악수하며 다음날의 선전을 기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오도리공원에서는 양팀 응원단이 나란히 누워 일광욕을 하기도 했다. 날이 저물면서 삿포로 중심가 스스키노 거리의 식당과 바 등에는 삼삼오오 모인 서포터들이 잔뜩 기대를 머금은 얼굴로 다음날의 경기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지만 쉽게 흥분하지는 않았다.
치토세공항에는 혹시 잠입할지도 모르는 훌리건에 대한 대비가 철저하게 이뤄졌다. 스포터(훌리건 식별 전문 경찰관)와 일반 경찰, 통역이 3인 1조가 돼 출구를 통과하는 외국인들의 얼굴을 주목했다. 전날 위조지폐를 사용한 외국인 3명이 적발됐던 사건이 보안 관계자들을 더욱 긴장시켰다.
이날 오후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선수단이 삿포로에 도착하면서 축제분위기는 절정에 올랐다. 잉글랜드팀이 머무는 프린스호텔 주변에는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오언을 보기 위해 300여명의 여성팬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팬들과 보도진이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시는 끊일 줄 몰랐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과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머무는 삿포로 쉐라톤호텔도 사정은 비슷했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이날 저녁 차례로 삿포로돔에서 몸을 풀며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삿포로의 밤은 다음날의 긴장을 뒤로 한 채 무르익었다. 양 팀의 서포터들은 7일 밤 경기장에서 폭발시킬 무언가를 저마다 가득 담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오도리공원을 거닐던 아르헨티나 서포터 후안 카를로스 히르가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까지는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모두 친구겠지만 내일도 친구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삿포로〓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