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참패 충격]『실력만이 통한다…정신적 거품 걷자』

  • 입력 1998년 6월 21일 18시 30분


“축구는 축구일뿐 마음 다잡고 다시….”

21일 새벽 한국이 네덜란드에 0대5로 참패하자 밤을 꼬박 새우며 응원했던 국민은 허탈과 좌절감에 망연자실하면서도 이를 계기로 우리 자신과 국제사회간의 간극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새출발하는 각오를 다지자고 입을 모았다.

대다수 시민은 “현격한 실력차는 외면한 채 신바람과 투혼만을 앞세운 한국축구의 한계를 드러낸 경기”라면서도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국가적 절망이나 좌절로 여길 것이 아니다. 다시 손잡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국면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계기로 삼자”고 다짐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장 곽수일(郭秀一)교수는 “이번 월드컵 축구를 계기로 ‘또 다른 정신적 거품 제거’가 과제로 떠올랐다”고 지적. 곽교수는 “수년간 쌓여온 물질적 거품이 꺼지면서 IMF사태를 맞았듯이 이번 월드컵 축구를 앞두고 우리는 지나친 정신적 거품을 스스로 쌓아왔다”면서 “축구든 경제든 세계시장에서는 실력만이 통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당수 기업이 16강 진출을 앞세우면서 경품제공 등을 내건 광고를 남발한 것도 일종의 경계해야할 ‘한탕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편승한 사회분위기로 온나라가 들떠 있었던 ‘거품현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자고 주문했다.

작가 이문열(李文烈)씨는 “월드컵 패배로 인해 4천만 국민 모두가 허탈감에 빠진다면 그것은 ‘냄비근성’의 또다른 한 측면”이라고 지적하며 “최악의 불황 속에서 월드컵 응원열기가 국민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측면에 만족하고 이젠 단결된 힘을 경제위기 극복으로 돌리자”고 호소.

○…광화문 동아일보 사옥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밤새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4천여명의 축구팬은 “한국축구 역사상 최고의 치욕스러운 경기”라며 분통을 터뜨렸다.그러나 일부 시민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좌절만 할 수는 없다. 축구는 축구일 뿐 우리에게는 빈사상태의 경제를 살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있다”면서 스스로를 추스르는 모습.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등 PC통신 게시판에는 선수단에 대한 비난이 주류를 이루면서도 상당수의 네티즌이 “16강 진출은 비록 좌절됐지만 남은 벨기에전만큼은 최선을 다해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했다. 회사원 김명희(26·서울 종로구 숭인동)씨는 “차기 개최국의 자존심을 살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상호기자〉ysh100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