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을 보았을 때, 현수막 다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차는 쌩쌩 달렸을 거고, 한겨울 칼바람도 불었을 거고…… 현수막이 걸릴 위치가 전혀 아닌데도 달려 있더라고요. 어떤 마음으로 다셨을지 짐작조차 안 가더라고요.”
〈송O주를 찾습니다〉(이날아 작가)
장기 실종자를 찾는 현수막이 소재로 등장하는 소설 속 한 대목이다. 소설 속 모티브는 송혜희 양 실종 사건이다. 지난해 8월 아버지 송길용 씨가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 현수막을 기억한다는 댓글을 남겼다.
신장 163cm, 얼굴이 둥글고 검은 피부, 흰 블라우스 빨간색 조끼 파란색 코트.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딸 혜희 씨 아버지 송길용 씨가 25년간 전국적으로 매달 현수막 300개, 전단 4000장을 돌렸다니,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하다.
송길용 씨의 1t 트럭. 동아일보DB
송탄여고 2학년이던 둘째 딸 혜희 씨가 1999년 2월 13일 학교에 공부한다며 나가고 행방불명되자, 아버지는 생업까지 접고 딸을 찾아 나섰다. 당시 버스 운전사가 30대 남성이 따라 내렸다고 증언했으나, 경찰이 이를 단순 가출자 처리하면서 초기대응이 늦어졌다.
처음엔 부부가 찾았으나, 엄마는 딸이 실종되고 8년이 지나자 세상을 스스로 등졌다. 길용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전단을 나눠주기 전 소주 1병씩을 마셨다고 한다. 그도 세상을 등질 생각을 했지만 곁에 있는 큰딸과 언제가 둘째 딸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경찰 수사도 2004년 종결됐고 납치 혹은 인신매매 공소시효도 2014년 끝났지만, 그는 1톤 트럭을 몰고 현수막을 달았다. 딸이 용돈을 모아 개통해 준 016 휴대전화 번호도 20년 가까이 바꾸지 않았다.
현재 혜희 씨를 찾는 현수막은 지자체에서 대부분 철거했다. 아직 달지 못한 현수막 30여 개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사무실에 남아 있다. 나주봉 전미찾모 회장과 18일 통화를 하다가 알게 된 일이다. 그는 “아버지 길용 씨 뜻에 따라 남은 현수막도 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길용 씨가 세상에 없지만, 애끓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도무지 현수막을 폐기할 수 없고 용도에 맞게 새로 달겠다는 것이다.
2023년 기준으로 20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은 경찰청 기준으로 1070명에 달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해 왔다. 동아일보는 2004년 ‘‘사라진 사람들’ 왜 못찾나’ 기사를 통해서 당시 가출·실종자 수사는 경찰서 간 협조가 특히 중요한데도 강력범죄 검거 실적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공조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사는 사건이 터져야만 수색이 시작되는 분위기도 문제 삼았다. 길용 씨는 경찰의 부실한 초기 대응에 분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종자를 단순 가출자로 판단하는 등 조치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최근까지도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수사기관이 실종자 수색에 적극적이지 않다 보니, 실종 사건은 민간 조사원이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곽탐정사무소 곽나현 대표는 “민간 조사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민간 조사원 루미노케이 이아영 실장은 “성인 실종자를 찾아달라는 연락도 자주 받는다”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법 제도를 더 보완할 여지가 있지만 실종자 수색을 위한 법 개정안 처리는 지지부진하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말 경찰이 실종된 성인을 수사할 수 있는 신고 체계를 구축하고 관련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실종성인법안’과 ‘실종아동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현안 시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미뤄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이보다 더 시급한 일이 없을 것이다. 현수막을 남기고 간 마음을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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