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수익 공증” 로펌 이름 도용한 투자 리딩방, 피해액 2970억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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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 안나면 투자금 반환” 약속
로펌 명의 지급보증서 꾸며 배포
변호사 이름-사진 도용 사기극도
“개인적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


대기업에 다니는 50대 김중섭(가명) 씨는 최근 고수익 투자처를 소개한다는 텔레그램 투자 리딩방에 초대됐다. 비상장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다른 회원들이 인증한 투자 계약서에는 법무법인(로펌)의 이름뿐 아니라 워터마크(불법복제 방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검색해 보니 실존하는 로펌이었다. 진짜 계약서라고 철석같이 믿은 김 씨는 기대에 부풀어 노후자금 3200만 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투자를 권유한 업체는 돌연 잠적했다. 당황한 김 씨가 계약서에 적힌 로펌에 연락해 보니 “해당 투자와 전혀 관련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 씨는 그제야 ‘속았다’ 싶었지만 이미 대화방은 사라진 후였다. 김 씨는 “실제 로펌 이름이 적혀 있는 등 감쪽같아 사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 로펌 도용한 ‘간 큰’ 투자 사기 일당

11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로펌의 이름을 도용해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은 뒤 잠적한 투자업체를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법무법인이 김 씨 등 사기 피해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사기업체를 지난달 24일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로펌까지 도용하는 투자 리딩방 사기는 흔치 않아서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고수익을 약속한 뒤 돈만 챙겨 달아나는 투자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로펌과 변호사가 관여한 것처럼 속이는 업체까지 등장해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전직 고위 공직자 등을 허위로 내세운 투자 사기가 빈발하며 경각심이 커지자 아예 법률 전문가로 속이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로펌이 공증한 것처럼 서류를 정교하게 꾸민 수법도 나왔다.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한 투자 리딩방 업체에 사문서위조 혐의를 적용해 추적하고 있다. 리당방 업체는 투자자 1명당 입회비 명목으로 250만∼1000만 원을 받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돌려주겠다’면서 이를 법무법인 T사가 공증한 것처럼 지급보증서를 꾸며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법무법인은 실존하지만 해당 투자와는 무관한 곳이었다. 소속 변호사는 “리딩방에 168명이나 가입했다고 한다”며 “피해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법적 대응을 위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 “채팅방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봐야”


도용당한 로펌들은 홈페이지에 팝업 안내창을 띄우거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투자 리딩방 가입을 권유하지 않습니다. 속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게시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 법률사무소의 서모 변호사는 의뢰인의 제보를 받고서야 자신의 사진이 투자 사기 업체에 1년 넘게 도용된 걸 알았다. 법률사무소 홈페이지에 있는 서 변호사 사진을 가져다가 가상의 애널리스트 ‘이가은’을 만들고, 해당 프로필로 1년 넘게 주식 리딩방을 운영한 것이다.

로펌 공식 홈페이지에서 바로 프로필을 확인할 수 있는 변호사의 이름을 도용하는 건 ‘설마 이것도 가짜겠냐’는 피해자의 심리적 허점을 노린 수법이면서, 그만큼 사기범들이 ‘잡히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이 투자자 모집에 주로 악용하는 보안 메신저 텔레그램은 본사가 해외에 있고 수사기관의 요청에도 피의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추적하기 쉽지 않다. 어렵사리 일부 가담자를 특정해도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특성 탓에 피해액을 돌려받기는 더 어렵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경찰에 신고된 투자 리딩방 피해액은 2970억 원에 달한다.

수사당국은 로펌 등을 앞세워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채팅방에서 투자자를 모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딥페이크(이미지 조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만큼 정교해 보이는 공문서도 믿어선 안 되고 꼭 발급처에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오는 투자 권유는 전부 가짜라고 생각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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