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명 선생 이어… 아름다운 제주 나비 연구 활발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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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연구보고서
2018∼2022년 생태 변화 조사… 산굴뚝나비 고지대로 이동 확인
멸종된 담흑부전 나비 발견 성과… 남방계-북방계 개체 공존해 관심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소속 연구원 등이 한라산국립공원 깃대종인 산굴뚝나비를 비롯해 고지대에 분포하는 나비를 조사하고 있다. 나비는 기후와 서식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생태계 변화를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도 제공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소속 연구원 등이 한라산국립공원 깃대종인 산굴뚝나비를 비롯해 고지대에 분포하는 나비를 조사하고 있다. 나비는 기후와 서식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생태계 변화를 확인하는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도 제공
세계적인 나비학자 고 석주명 선생(1908∼1950)의 뒤를 이어 제주에서 나비를 연구하는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각종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석 선생은 1936년과 1943∼1945년 2차례 제주에 머물면서 나비를 채집해 학계에 발표했다. 이로부터 80여 년이 흘러 제주 출신 신진 학자들의 나비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최근 ‘한라산 나비군집의 시공간적 변화 연구’ 논문을 게재한 제23호 조사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연구는 한라산 영실탐방로 입구(해발 1280m)에서 백록담 정상(1947m)까지 9개 지점을 선정한 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나비 분포를 조사했다.

한라산에서 관찰된 나비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굴뚝나비, 산꼬마부전나비, 가락지나비, 조흰뱀눈나비. 좌명은 씨 제공
한라산에서 관찰된 나비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산굴뚝나비, 산꼬마부전나비, 가락지나비, 조흰뱀눈나비. 좌명은 씨 제공
이 연구에 따르면 천연기념물 제458호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굴뚝나비의 개체는 최근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출현 개체는 2018년 809마리에서 2019년 253마리, 2020년 254마리, 2021년 256마리, 2022년 161마리 등으로 감소한 것. 산굴뚝나비는 한라산국립공원 깃대종으로 2019년 지정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산굴뚝나비의 분포지가 고지대로 이동하고 있다고 관측했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해발 1500m 이상 남벽 구간에서 7월에 가장 많이 출현한 것. 이번에 확인한 35종 가운데 500마리 이상 출현한 주요 종은 줄흰나비, 가락지나비, 은점표범나비, 도시처녀나비, 먹그늘나비, 조흰뱀눈나비, 줄점팔랑나비 등으로 조사됐다. 먹그늘나비 역시 개체 수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산굴뚝나비와 줄흰나비 서식지는 고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학회가 발간하는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재 학술지인 ‘제주도연구’에는 최근 ‘제주도 나비의 고도별 분포와 군집에 관한 연구’가 실렸다. 이 연구는 해발 0m에서부터 한라산 1900m까지를 4개 구간으로 나누고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21회에 걸쳐 조사한 내용과 분석 결과를 수록했다.

이 조사에서 확인된 나비는 65종 3만6179마리로 나타났으며 해발 고도별로는 450∼750m에서 가장 많은 50종이 출현했다. 월별로는 7월에 59종을 확인했으며 출현 개체 수로는 8월 8634마리로 가장 많았다. 특히 제주에서 멸종한 것으로 기록된 담흑부전나비를 한라산 중턱 초지대에서 관찰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산꼬마부전나비, 조흰뱀눈나비 등이 이전보다 높은 해발 1500m로 서식지를 이동한 것으로 확인했다.

제주는 남방계 나비가 해풍에 의해 유입되는 길목인 동시에 북방계 나비가 한라산 고지대에 남아있는 독특한 지역으로 나비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아 왔다. 산굴뚝나비 등 10종의 북방계 나비는 오래전 한랭한 피난처를 찾아 한라산 고지대로 이동했다가 격리된 유존종(遺存種·과거 넓게 분포했지만 현재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생존하는 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가운데 산굴뚝나비, 가락지나비, 산꼬마부전나비는 남한에서 한라산에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에 분포하는 나비는 석 선생이 66종을 보고한 뒤 여러 학자가 조사를 진행했는데 신뢰할 만한 자료는 주흥재 전 경희의료원장(1936∼2022) 등이 2002년 발표한 91종으로 평가받는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2021년 발간한 ‘제주도 나비와 문화’에서 이전 91종에 뾰족부전나비와 소철꼬리부전나비를 더해 제주 분포 나비를 93종으로 정리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김완병 연구사는 “곤충, 식물생태계와 공진화하는 나비는 서식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발생 양상이나 개체군 군집 구조가 달라지기 때문에 기후나 생태계 변화의 지표종으로 보고 있다”며 “석 선생 후예들의 다양하고 활발한 연구가 변화하는 생태계를 감지하는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나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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