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위기 ‘심각’ 최고단계 첫 발령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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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혼란]
전공의 74% 사직-64% 병원이탈
레지던트4년차-전임의 ‘3월 공백’
“전공의 이탈 장기화땐 의료 대란”

공공의료기관에 환자 북적 22일 공공병원인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대기실이 진료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전날까지 전국 대형병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중 64%가 병원 근무를 중단하며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공공의료기관에 환자 북적 22일 공공병원인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대기실이 진료 접수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전날까지 전국 대형병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중 64%가 병원 근무를 중단하며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놓고 정부와 의사단체 간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3월 의료대란’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대형병원들은 전공의(인턴, 레지던트)가 대거 병원을 이탈하면서 수술을 30∼50% 줄이고 중증·응급 환자 위주의 비상진료 체제로 운영 중이다.

22일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대형병원에서 이달 말 수련이 끝나는 레지던트 4년 차가 병원을 떠난다. 레지던트 4년 차는 수련 마지막 단계인 만큼 상당수가 병원을 떠나지 않고 근무 중이다. 또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전임의(펠로)의 근무 기간도 함께 만료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원장은 “레지던트와 전임의가 대거 떠날 텐데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다. 다음 달이 진짜 위기”라고 했다. 공공병원 97곳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비상진료 계획’도 다음 달에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높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2, 3주 지나면 감당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1일 오후 10시 기준으로 전국 100곳 수련 병원에서 전공의 9275명(74.4%)이 사직서를 냈고, 이 중 8024명(64.4%)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돌아오지 않은 인원은 총 5596명이다. 의료 공백이 커지면서 정부는 23일 오전 8시부터 보건의료위기 단계를 ‘경계’에서 최상위 단계인 ‘심각’으로 상향한다. 보건의료위기 ‘심각’ 단계가 발령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에 따라 23일부터 복지부 중심의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국무총리 주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된다.

전공의 이탈속 전임의 내달 잇단 계약만료… “수술실 유지 어려워”


‘3월 의료대란’ 위기 3가지 징후
①교수 포기한 전임의 이탈 러시
②4년차 레지던트 충원 어려워
③공공병원 비중 낮아 한계 봉착


서울의 한 대형병원 필수 진료과에선 다음 달 초 전임의(펠로) 5명이 계약 만료로 그만둔다. 그만큼 다시 충원해야 하지만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집단사직의 여파로 후임자를 아직 한 명도 못 찾았다. 이 병원 관계자는 “전임의까지 병원을 떠나게 되면 절반 남짓인 수술실 가동률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예측조차 어렵다”고 했다.

의료계에선 전공의 병원 이탈이 장기화될 경우 계약이 만료되는 전임의와 레지던트 4년 차가 병원을 떠나는 다음 달 ‘의료대란’이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병원을 활용하는 정부의 비상진료체계도 조만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 “후배 돕자” “교수 포기” 전임의 동요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1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비상진료체계가 2, 3주 후면 한계를 보일 것이란 지적에 대해 “훨씬 더 지속 가능한 대응이 유지되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규제를 완화하고, 공중보건의사 등을 동원해 비응급·경증환자를 1, 2차 병원으로 돌리고 3차 병원은 응급·중증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선 “장기전으로 가면 버틸 수 없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이달 말∼다음 달 초 전임의(펠로)의 계약이 대부분 만료된다. 전임의는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대학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의사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전임의가 225명으로 전체 의사의 약 16%다. 전공의보다 숫자는 적지만 수련도가 높아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크다.

원래 전임의를 마친 일부는 대학병원 교수로 남아서 근무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교수직을 포기하고 병원을 떠나는 전임의가 더 늘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임의들은 “의사가 국민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매도되는 현 상황에서는 의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성명을 20일 발표하며 이탈을 예고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는 “소화기내과 2년 수련 과정을 포기하고 1년만 마친 후 떠나겠다는 전임의 후배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로 전문의 취득을 앞두고 있어 이번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4년 차 레지던트들도 이달 말∼다음 달 초 계약이 만료된다. 이들의 자리를 채워야 할 1∼3년차 레지전트들은 이미 병원을 이탈했다. 김성근 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는 “현재 신입 교육을 받고 있어야 할 예비 인턴, 레지던트들이 거의 병원을 떠났다. 사태가 봉합되더라도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전공의도 상당수”라고 했다.

● “지방 공공병원 “3주 이상은 한계”


정부는 공공병원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2021년 기준 국내 의료서비스 중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10.8%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서울대병원 등 이번 전공의 사직으로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곳도 상당수다. 정부는 대학병원 등을 제외한 공공병원 97곳이 정상가동된다고 설명하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곳들이다.

지방 공공병원은 기존 인력이 적어 과부하가 더 빨라질 수 있다. 정기호 강진의료원장은 “현재 내과와 외과에서 한 명씩 3교대로 나눠 24시간 대기 중”이라며 “이 상태로 3주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되면 공공병원에 한계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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