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제’ 핑계댄 노숙집회 제한규정 모호, “해산 불응해도 벌금 그쳐… 법 개정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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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엄중 책임” 강경 방침에도
노숙 자체 단속할 방안 마땅찮아
자정이후 옥외집회 금지법 국회 계류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일대를 점거하고 1박 2일 노숙 집회를 진행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6일 밤 광장을 차지한 채 술판을 벌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일대를 점거하고 1박 2일 노숙 집회를 진행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16일 밤 광장을 차지한 채 술판을 벌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도심에서 16, 17일 열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건설노조의 대규모 1박 2일 ‘노숙 집회’를 계기로 경찰이 야간 시간대 문화제를 빙자한 집회 등을 강제 해산하거나 제한하는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현행법상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 통과 외에는 규제할 방안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9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이번 건설노조 집회에서는 다양한 불법행위들이 발생했다”며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불법 집회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18일) 윤희근 경찰청장도 ‘야간 길거리 노숙 규제 방안 마련’ 등을 천명함에 따라 경찰청은 19일 후속조치 마련에 착수했다. 경찰은 노숙, 문화제를 빙자해 집회가 열릴 만한 광장, 특정 공공장소 진입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방법도 검토 중이다. 또한 집회 관리용 폴리스라인 등 장비 추가 확보에도 나서며 향후 불법 집회 강경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민노총은 그간 문화제를 표방한 ‘꼼수 집회’를 열어왔다. 집시법 15조가 축제, 추모제, 관혼상제 관련 집회에 대해선 제한, 금지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경찰은 현행 집시법상 문화제·전야제 등에서 단체 구호, 피케팅 등 집단행동을 하면 이를 집회로 규정하고 해산을 명령할 수 있고 당초 신고한 집회 시간보다 늦게까지 진행돼도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불응 시 강제 해산을 시키기는 쉽지 않다. 16, 17일 집회에서도 해산을 6차례 명령했지만 불응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해산하지 않아도 주최자 처벌이 벌금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강제 해산에 나서려면 집회 참석 인원보다 2, 3배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충돌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법상 노숙 자체를 단속할 방안도 마땅치 않다. 집시법 8조는 집회 및 시위가 폭행·협박·손괴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을 초래하거나 주요 도로에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을 때 등에 금지를 통고할 수 있는데 노숙 집회가 여기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다수 인원이 모여 술판을 벌이는 등 시민들에게 위압감과 불편을 줄 경우 금지 및 해산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집회 신고자, 주최자가 과거 집회 시 폭행, 집시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을 경우에도 집회를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과거 사안에 근거해 미래의 집회 및 표현의 자유까지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법은 법 개정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자정 이후에 옥외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시법에 ‘노숙 집회’에 대한 내용이 아예 없다”며 “법 개정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사회적 합의를 우선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문화제 핑계#노숙집회#제한규정 모호#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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