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만원어치 법학책 5000원에 불법공유”… 로스쿨생 50명 고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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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서적, PDF파일로 복제-유포
출판사 10년새 20곳서 3곳 남아
출판사 대표 “오죽하면 고소했겠나”
학생 “매학기 책값 수십만원 부담돼”

24일 오후 전국 법학전문대학원에 전공 서적을 납품하는 A출판사 백현관 대표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사무실에서 안 팔려 반품된 책들을 앞에 두고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4일 오후 전국 법학전문대학원에 전공 서적을 납품하는 A출판사 백현관 대표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사무실에서 안 팔려 반품된 책들을 앞에 두고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신학기 법학 교재 70만 원어치가 단돈 5000원에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되잖아요.”

10년 넘게 국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교재를 납품해 온 A출판사 백현관 대표(56)는 서울 관악구 사무실에 쌓인 책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24일 기자가 찾은 사무실에선 직원 10여 명이 디자인과 검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백 대표는 “올 1분기(1∼3월) 매출이 급격히 줄어 교재 연구 직원 5명을 줄였다”고 했다.

최근 대학가에서 커뮤니티와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전공 서적 불법 복제 및 공유가 일상화되면서 출판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로스쿨의 경우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 고가의 전공 서적이 전자문서(PDF) 파일로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어 ‘예비 법조인들이 불법을 공공연하게 저지른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전공 서적 출판사 20곳에서 3곳으로 줄어”
A출판사는 변호사시험 모의고사를 출제하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법전협)에 매년 수천만 원을 내고 복제이용권을 사들여 책을 만들었다.

백 대표에 따르면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이 치러질 당시만 해도 전국 25개 로스쿨에 전공 서적을 납품하는 출판사가 20곳이 넘었다고 한다. A출판사 역시 매년 10억 원 안팎의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PDF 파일로 만든 불법 복제물이 대량 유포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게 됐다. 백 대표는 “한 번이라도 복제되면 이후 무제한 복제돼 유통되기 때문에 사실상 해당 책의 수명은 끝난다”며 “20곳 넘던 전공서적 출판사가 우리를 포함해 3곳밖에 안 남았다”고 하소연했다.

올 1분기 매출은 1억9623만 원으로 2년 전보다 40%가량 줄었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1분기 매출이 매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다 보니 회사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백 대표는 “지난해에는 대출이라도 받아서 겨우 버텼는데 올해는 밀린 대금 처리조차 못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로 24일 한 로스쿨 재학생 온라인 커뮤니티를 확인한 결과, PDF 불법 복제물을 판매하거나 구매한다는 글이 30건 넘게 올라와 있었다. 불법성을 감안한 듯 초성만 따서 올린 게시물이 많았다. 거래를 희망하는 사람이 비밀댓글을 달면, 익명 오픈채팅방 링크를 보내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백 대표는 지난달 30일부터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인한 판매자와 구매자 등 50여 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경찰서 9곳에 고소했다. 그는 “오죽하면 전공 서적 이용자인 로스쿨 학생들을 고소까지 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 “매 학기 수십만 원 책값 부담”
로스쿨생들 사이에선 “불법이라는 건 알지만 전부 새 책을 사려면 가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로스쿨에 매년 1000만∼2000만 원의 등록금을 내고, 온라인 강의나 학원비까지 들어가는데 추가로 수십만 원의 책값까지 들이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올해 로스쿨을 졸업한 A 씨(26)는 “전공 서적을 비싸게 구입해도 매년 판례가 달라지다 보니 이듬해 다시 새 책을 구입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암묵적으로 불법 복제물을 공유하는 관행이 생겼다. 저도 매 학기 50만 원에 이르는 교재 비용을 아끼려고 PDF 파일을 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불법 복제물을 사거나 파는 건 엄연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한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불법적 관행이 유지될 경우 저작물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이용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
#법학책#로스쿨#출판사#법학 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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