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고에도…음식물쓰레기 늪엔 여전히 ‘생명 밧줄’이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6일 1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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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새벽 부산 강서구의 한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에서 청소노동자가 수거 차량 짐칸에 끼인 잔여물을 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차량과 저장고 사이의 거리가 1m에 불과한데다 바닥이 미끄러워 작업 중 넘어지면 저장고로 추락할 위험이 있지만 별다른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20일 새벽 부산 강서구의 한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에서 청소노동자가 수거 차량 짐칸에 끼인 잔여물을 물로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차량과 저장고 사이의 거리가 1m에 불과한데다 바닥이 미끄러워 작업 중 넘어지면 저장고로 추락할 위험이 있지만 별다른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20일 오전 3시 30분 부산 강서구 지역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생곡음식물자원화시설 내부로 들어서자 더운 열기와 함께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왔다. 주택가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을 열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역한 냄새가 났다. 이 곳에 있는 저장고에는 부산 시내 곳곳에서 모여든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적갈색의 ‘늪’으로 보였다. 저장고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었다.

기자가 생곡음식물자원화시설을 찾았을 때 청소 노동자 2명이 해운대구 재송동 공동주택에서 수거해온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었다. 부산에선 하루 평균 739t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며 이를 6곳의 민간·공공시설에 처리한다. 이곳은 13일 음식물 쓰레기 수거 업체 직원이 작업 도중 저장고로 추락해 사망한 기장군의 민간 업체와 구조가 거의 유사하다.

청소 노동자가 음식물 쓰레기 저장고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현장에는 안전 대책이 사실상 전무했다. 기자가 찾은 시설은 부산시 산하 부산환경공단이 운영·관리하는 공공시설임에도 위험한 작업 공정이 반복되고 있었다.

5t급 수거 트럭이 이 곳으로 들어오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는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작업은 크게 3단계를 거쳤다. 우선 저장고에 수거차량을 바짝 대기 전 액체 오물을 먼저 배출했다. 물기를 최대한 빼내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기름기와 습기를 머금은 흑갈색 오수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바닥은 빙판길처럼 미끄러웠다. 조깅화를 신은 기자는 넘어질까 한 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어야 했다.

이후 작업자가 차량 옆의 레버를 당기니 ‘웅’ 하는 굉음과 함께 쓰레기 투하가 이뤄졌다. 5분 가량 이어진 뒤처리 작업은 지켜보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작업자는 쓰레기 차량의 짐칸 구석구석에 끼인 잔여물을 제거하기 위해 호스로 물을 뿌렸다. 쓰레기차와 음식물 쓰레기 저장고 사이의 1m 남짓한 공간에서 작업자는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잔여물 제거 작업을 했다. 자칫 발을 헛디뎠다가는 5m 가까이 되는 저장고 안으로 추락할 위험이 커 보였다. 13일 참변을 당했던 기장군 업체 청소 노동자도 이 작업을 하다 미끄러져 저장고로 추락했다.

쓰레기 상차원 김모 씨(60)는 “보통 호스만으로 세척작업을 끝낼 수 있지만 오물이 안 떨어지면 빗자루나 삽으로 긁어내야 한다. 최근 사고도 삽으로 뒤처리 중 저장고로 미끄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산시가 관리하고 있는 업체였지만 현장에 작업자들을 위한 안전 장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추락 방지를 위해 몸을 고정하는 로프나, 추락 때 응급 구조를 위한 사다리도 없었다.

김 씨는 “큰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추락 때 탈출 할 수 있는 밧줄 하나만 있어도 좋겠다. 6곳의 처리업체에 이런 구호장비가 설치 된 곳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했다. 수거 차량 운전기사 이모 씨(37)는 “추락을 원천적으로 막을 ‘안전 난간’을 설치하면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사방이 난간으로 된 별도 발판에 올라 뒤처리를 하면 저장고로 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주 부산노동권익센터 사무국장은 “청소노동자가 생명을 걸면서 생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은 사라져야 한다”며 “미연에 사고를 막을 장치와 어쩔 수 없는 사고 때 신속 구출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시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사다리와 로프 등 안전장치를 설치할 것을 각 처리업체와 일선 구군에 지침을 하달했다.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기장경찰서는 13일 음식물쓰레기 처리 업체에서 발생한 청소 노동자 사망사고를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작업자가 저장고에 빠져도 올라올 수 있는 장치가 있었는지 등 업체 측의 안전 관리 실태를 유관 기관과 함께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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