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주권 미치는 곳 어디서든 난민 신청 가능”…‘한국판 터미널’ 외국인 희망 보여

박상준 기자 입력 2021-04-21 23:07수정 2021-04-2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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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환승객이라는 이유로 법무부로부터 난민 신청조차 거절당한 채 인천국제공항에 14개월 동안 갇혀 ‘한국판 터미널’ 사례로 불렸던 아프리카인 A 씨에 대해 법원이 “공항 환승구역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에 있는 외국인은 누구든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법리를 내놓았다. 법조계에선 난민 인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전향적인 법원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난민 신청 거부당해 공항에서 14개월 노숙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발권카운터 © News1
21일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배준현)는 A 씨가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난민인정 신청 접수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법무부의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A 씨가 공항 환승구역에 있다는 이유로 난민 심사조차 받아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A 씨는 본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으며 가족과 지인이 살해당하자 본국을 탈출해 한국을 경유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 2월 15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법무부 측은 “환승객은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없고 난민 신청권이 없다”고 했다. 오갈 데가 없어진 A 씨는 인천공항 터미널에서 1년 2개월을 보냈다. 건강이 악화돼 쓰러지기도 했지만 A 씨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A 씨는 사단법인 두루의 이한재 이상현 변호사,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일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공항 환승구역에서의 구금을 해제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인천지법 형사항소1-2부(부장판사 고승일)는 이달 13일 “A 씨의 수용을 임시적으로 해제한다”며 “A 씨가 환승구역에서 사생활의 보호나 의식주와 의료서비스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처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결정했다. 외국인도 보호시설에 구금된 ‘피수용자’와 같이 법원이 직권으로 수용을 해제할 수 있다는 첫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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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을 나갈 수 있게 된 법원 결정과 별개로 인천지법은 지난해 6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청은 난민 신청을 원하는 공항 환승객을 도와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무부는 즉각 항소했다. 다만 해당 1심 재판부는 공항 환승객에게 난민 신청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 법원 “공항 환승객도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 있어”
난민인권네트워크 관계자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삼거리에서 난민신청 접수거부 사건 위법확인소송 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2021.4.21/뉴스1 (서울=뉴스1)
그러나 2심에 이르러 서울고법 행정11부는 난민법과 국제인권조약을 자세히 검토해 “대한민국의 주권은 한국 공항과 그 환승구역에 있는 외국인에게도 미친다”며 “따라서 한국 공항 환승구역에 진입한 외국인은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난민법 5조는 “대한민국 안에 있는 외국인은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법무부는 환승구역에 있는 외국인에게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만들어 난민 신청을 거부해왔지만 서울고법은 그러한 법무부의 법해석이 틀렸다고 본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유엔 난민협약상 ‘강제송환 금지의 원칙’을 강조했다. 강제송환 금지 원칙은 “난민을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재판부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이 난민으로 인정된 외국인 뿐만 아니라 난민으로 인정받으려고 신청하는 사람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국경에서 그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A 씨를 지원한 이한재 변호사는 “환승객에게도 난민신청권이 있음을 분명히 확인하는 첫 고등법원 판결”이라고 했다. 이일 변호사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 각국 입법례 등을 검토해 난민 인권을 두텁게 보호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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